예순의 불안
예순의 나이를 몰랐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살아지는 줄 알았던 예순을 맞아, 예순의 나이가 위기라는 현실과 맞닥뜨렸다. 예순의 삶은 순조롭지 않았다. 새로울 것도 없는 하루하루가 지루하다 못해 지쳐갔다. 단조로운 가족 구성원은 부부만 남았다. 일상을 나누는 주변과의 만남조차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만남의 대부분은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하다가 헤어지는 날이 반복되는 그 만남은 나를 공허하게 했다. 하루 이틀도 아닌 일상이 된 그날들은 무의미한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허한 날들을 보내면서 예순의 삶이 메마르기 시작했다. 예순의 고민이 깊어가던 어느 날 예순을 검색했다. 수도 없이.
검색을 하던 중, 신조어 '신중년!' 발견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 단어인가? 노년이란 검색어는 피하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노년이 두려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노년에 대한 현실은 부정적이고 질병과 빈곤 등 편견 된 인식이 싫었다.
'그래, 신중년!'
그나마 내 안에 불편한 진실과 합의를 한 셈이다. 노년은 거북하고 신중년이란 단어는 조금이나마 덜 부담스러웠다. 그즈음에 여행의 맛을 보고 여행에서 만난 역사와 마을 공부를 하면서 마을마다의 색다른 골목이 좋아서 마을 여행과 신중년을 조합했다.
예순의 극복
생의 3분의 1을 부모 슬하에, 3분의 1을 자녀들에게, 그리고 남은 생은 못다 한 삶을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예순 즈음 검색할 때 인기 검색어 1위는 도시재생이었다. 도시재생이란 단어가 신물이 날 정도로 검색을 했다. 며칠 동안 검색을 하다가 서점으로 갔다. 도시재생에 관한 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표지와 목차만 보고 책을 골랐다. 그렇게 3년 동안 도시재생 책을 읽고 마을활동가 기초, 심화과정과 도시재생 교육을 받고 도시재생 문화기획자 과정을 수료했다.
예순의 나이는 스스로를 소외시켰다. 젊은 사람들은 도시재생 마을활동가 교육을 받고 취업을 했다. 예순이라는 나이는 모집공고를 보고도 나를 제외시켰다. 물론 도시재생이 뭔지, 마을활동가가 뭔지 궁금해서 시작된 교육이었기에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포기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역에서 '마을활동가'교육이 있었다. 또 2년 6개월 동안 장거리를 매주 1회 마을활동가 기초, 심화과정을 마쳤다. 교육조차도 쉽지 않았다. 내 아이들 또래의 젊은이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다. 그 교육이 끝날 즈음 젊은이들의 무리에 참여하기가 어중간한 사람들끼리 뭉쳤다.
처음에는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으로 시작했다가 마을 답사를 하기 시작했다. 5년 동안 마을 공부를 하고 아쉬운 마음에 뭐라도 하고 싶었다. 겨우 두 세 사람이 마음을 모아 인원을 동원해서 군청에 동아리 등록을 했다 그해 여름 평생학습 동아리 지원사업에 공모하여 지원금으로 자료집을 발행하기로 했다. 동시에 60의 언저리에서 만난 또래들과 일주일에 한 번 마을 여행을 다니면서 예순의 삶이 말랑말랑해졌다.
예순의 희망
2022년 초하룻 날 긴긴밤을 보냈고, 이튿날 까만 밤을 밝히고 1월 3일 새벽 5시 40분경 <제1호 자료집> 144 페이지의 원고를 마감하고 메일로 발송했다. 시간이 촉박해서 많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날 그 밤은 행복했다. 보잘것없고 턱없이 부족하고 사소한 기록이지만 결과물을 남기는 일이라 뿌듯했다. 예순의 나이에 마을 여행을 만나 <예순에 만난 늴리리야>를 노래하며 행복한 신중년의 끝자락까지 왔다. 마을을 읽고 쓰고 말하며 마을 여행은 계속된다.
임인년 새해, 아직 이렇다 할 계획조차 없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멈춘 듯하다. 불안하고 심심한 오늘을 살아가면서 위기는 불안을 극복하고 희망을 품기까지 고민의 시간은 삶의 애정과 연민이 있어 끈질긴 노력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노력 안에 소소한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은 강한 욕구가 있었다. 그 소소함은 많은 것들을 던져 버릴 수 있었다. 가볍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예순의 위기에서 발견한 깨달음이다. 그때서야 예순의 희망을 만났다.
노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신중년은 소소한 행복을 머금고 아직도 달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