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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중년의 일상 Sep 14. 2023

 올해 최고의 여행지

서출지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 이른 아침 일광바다로 갔다. 겹겹이 파도가 밀려왔다가 사그라들었다. 가깝게 다가온 파도는 회색빛 물빛을, 그 너머 파도는 하얀 거품을, 그 너머는 연둣빛 물빛으로 릴레이 하듯 모래톱을 남기며 뜨거운 여름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회색빛 파도는 한여름 동안 인파에 시달렸는지 어두운 회색빛으로 모래를 토해냈다. 그 파도가 안쓰러워 늦장을 부리는 여름과 이별을 했다.


일광해수욕장을 떠나 고산 윤선도의 이야기가 있는 삼성대를 지나서 학리 마을로 달려갔다. 학리항으로 가는 동안 차창으로 바닷바람을 마셨다. 가을바람이다. 학리항에 도착하자 갈매기가 높을 하늘을 비행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하늘은 왜 그리도 높은지,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몽글몽글 어린이 그림책 표 지 같았다. 학리항 물양장에 묶여 있는 어선들이 물결 따라 하염없이 일렁이는 학리항에는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그곳에서 가을맞이를 했다. 높고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선선한 바람은 가을이 오는 길목이다.


여름을 보내면서 지난여름 '나는 무엇으로 살았는가' 여름의 기억은 어떤 것들이 남았을까, 기억을 끄집어냈다. 방울땀을 흘리면서 더위를 잊게 했던 서출지가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 1길 17) 떠올랐다.


경주 최고의 여행지, 서출지

마을 여행을 시작하면서 이름난 명승지 보다 덜 알려지고 인적이 드문 여행지가 좋아졌다. 게다가 새로운 여행지나 작은 마을 어귀에 돌멩이 하나에 역사가, 나무 한 그루에 오랜 시간이 담긴 소소한 마을의 가치를 찾아다니는 마을 여행을 즐긴다. 그런 소소한 것들에서 추억을 만나고 오늘을 담아 오늘이 잊힐 까봐 사진으로 영상으로 글로 기록을 한다. 그 기록은 나를 움직이게 한다. 올여름 내 안에 머물고 있는 마을 여행의 선물 같은 장소는 서출지다.  


서출지


초여름부터 여덟 번을 다녀왔다. 처음에는 어떤 곳일까 궁금해서 찾아 나섰고, 두 번째는 답사를. 세 번째부터는 삼삼오오 친구와 지인들에게 서출지를 소개하고 함께 여행을 했다. 가도 가도 좋았다.



서출지에 첫발을 내디뎠던 날, 서출지는 이렇다 할 안내표지가 없다. 네비의 안내를 받아 통일전 표지판을 보고 가다가 통일전 앞에서 좌회전하면 곧바로 주차장이 나온다. 그만큼 덜 알려진 곳이다. 여행을 흔히 '여기서 행복하다'는 표현을 하지만, 서출지는 행복 이상이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넋을 놓고 연신 저수지에 눈길을 가두고 나긋해진 발걸음은 신라시대 선비 걸음을 했다. 걷다 보니 너그러워진 마음이 좋았다. 작은 저수지에 연분홍 연꽃이 피었다. 이요당 앞에는 수련이 피었고, 서출지 둘레길에는 오랜 세월 비바람에 할퀴어진 붉은 소나무와 배롱나무가 저수지를 감싸고 있다. 배롱나무는 초록잎에 진한 분홍꽃을 조화롭게 피워냈다. 서출지는 전시를 하듯 여행자의 마음을 머물게 했다. 이곳은 신라의 달밤 촬영지다.


서출지 입구에 서출지 안내글이 눈에 띈다. 사적 제138호 서출지는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던 저수지다. 신라 소지왕의 흔적이 전설로 남았다. 이요당이 있어 서출지의 그림이 완성된 듯 완벽한 풍경이다. 그날따라 이요당에 문이 열려 있었다. 이요당에서 서출지를 바라보니, 신라천년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저수지 안에 연꽃과 파란 하늘, 목놓아 울어대는 여름 소리 맴맴맴. 여름의 한가운데 한낮 더위도 잊은 채 서출지에 빠져들었다. 주변은 기와지붕으로 작은 마을을 이루고 논, 밭, 골목길에서 시골 정서가 물씬하다. 저수지 앞에 가지런히 줄지어 심어놓은 벼가 골을 이루었다. 골을 따라 개구리, 올챙이가 헤엄을 친다. 논두렁을 따라 서출지 둘레길에는 여행자들이 감동의 환호성을 지른다. "와~! 아 예쁘다, 참 좋다, 너무 예쁘다" 등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요당으로 들어갔다. 이요당은 조선 현종(1664) 때 임적이 지은 정자다. 소박한 팔작지붕의 건축양식과 편액을 눈여겨보고 나왔다. 이요당을 나서면 돌담이 정겨운 무량사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한다. 무량사 돌담 너머에 바람을 품고 자라는 백접꽃이 돌탑을 뒤로하고 하늘거린다. 그 풍경에 여행자들은 카메라를 들이댄다. 무량사에 발을 내딛자 수많은 불상들을 마주하면서 불자가 아니어도 두 손 모아 합장을 하게 된다. 대웅전 건물은 오랜 시간의 빛바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불교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대웅전에 들어가 간절한 기도를 한다. 무량사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와 마을 골목길을 따라가면 맞닿은 길에서 생경한 사찰 풍경인 감실사를 만난다. 감실사에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서 신중년들은 신라시대 사찰에 대한 가물거리는 기억을 들추어 이야기를 하다가 여기당 가까이 벽화에 눈을 돌려 벽화에 그려진 경주 명승지를 읽는다.  


천년고도 경주는 관광특구로 많은 사람들의 잦은 여행지일 것이다. 경주만큼 만만하고 친절한 여행지가 또 있을까, 가는 곳마다 넉넉한 주차장과 아름드리나무와 수려한 풍경과 깊은 역사의 시간을 가로 세로 새겨놓았다. 내가 어릴 적 다녀온 경주 수학여행을 내 아이가 수학여행을 가고, 이후에도 가족 여행이나 친구들과 경주로 수시로 여행을 간다. 갈 때마다 보문호수 쪽에 있는 힐튼호텔을 이용하거나 당일 코스로 보문호수나 불국사로 자주 갔다. 최근 들어 라온호텔에 머물면서 아침저녁으로 보문호수 둘레길을 산책하는 그 마음이 편안하고 좋았다.


올여름 경주의 랜드마크 여행지를 따돌리고 찾아간 서출지는 미처 몰랐던 경주 최고의 여행지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좋은 여행지는 풍경 반, 맛이 반이다. 풍경만 좋다고 좋은 여행지가 아니다. 맛집과 카페가 근거리에 있어야 여행이 편리하고 덜 피곤하다. 서출지는 풍경도 맛도 최고다. 서출지는 저수지와 이요당과 돌담이 정겨운 무량사가 여행의 맛을 더한다. 또 서출지 근처에 있는 시래기전문점인 여기당이 여행자에게 매력적이다. 젊은이들이 시래기를 버무려 만든 시래기전과 시래기밥은 누구라도 반길 것이다. 어른들은 추억의 시래기 밥상을 찾아오고, 젊은이들은 레트로 감성을 시래기 밥상을 통해 경험하고 SNS를 통해 널리 알린다. 여기당은 점심 한 끼 밥상이다. 오전 10시 30분 대기표를 받아 예약시간에 도착해야 식사를 할 수 있다. 재료소진 시 마감이라 하루 한 끼 점심식사를 하려면 공을 들여야 한다. 그것도 월 화요일은 휴무다. 식사 시간이 되면 어디서 몰려왔는지 대기자가 모여든다. 오래 기다린 만큼 식사는 만족했다. 먹을만한 반찬을 깔끔하게 준비해서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시래기전이 먼저 나온다. 연이어 시래기밥과 된장국이 나온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일어선다.


여기당에서 식사가 끝나면 곧장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카페 서오로 간다. 서출지에 여행 온 사람들 대부분의 코스다. 서출지를 거닐다가 마주친 사람들이 여기당에서 만나고 카페 서오에서 또 만난다. 낯선 사람들은 서출지 여행의 맛과 멋을 소통하듯 어색한 미소와 함께 눈인사를 건넨다. 카페 서오의 이름은 주인장의 시어머님 택호라고 한다. 한옥카페에 택호를 상호로 간판을 올렸다. 우리의 정서가 듬뿍 담겨서인지 친근하게 다가왔다. 카페라테 한 잔을 마셨다. 서출지의 감칠맛이다. 아이스라테는 커피샷을 추가하면 더욱 맛있다. 카페 서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기와담장 위에 초록한 단풍나무에 매달린 노란 전구조명이 따스한 빛으로 투명하게 비친다. 아름다운 그 풍경은 창가에 눈길을 머물게 한다. 사방이 사각유리창으로 서출지와 이요당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곳에서 한참을 속닥거리다 다음 여행지 경북천년숲정원으로 달려간다.


경북천년숲정원은 서출지 여행의 연장선이다. 그곳에는 다양한 꽃과 나무, 과실수가 자라고 있다. 물기를 머금은 왕버들이 호수에 가지를 늘어뜨린 풍경이 꽤 인상적이다. 이어 새들이 유난히 짹짹거리는 정원을 지나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북천년숲정원의 포인트인 외나무다리로 내려간다. 그곳에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다. 외나무다리 위에 서면 누구나 모델이 된다. 각도를 달리하고 셔트를 누르고 한 편의 드라마를 찍는듯하다. 외나무다리 아래 물빛은 날씨에 따라 다르다. 맑은 날은 하늘과 구름이 깔려서 배경이 더욱 아름답다. 흐린 날은 인물중심으로 촬영을 한다. 경북천년숲정원을 찾는 이유는 외나무다리가 아닐까 싶다.


그다음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갔다.  '천마, 다시 만나다' 특별전시를 보러 갔다. 까마득해진 천마를 다시 만나고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이디야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국립경주박물관의 전경과 멀찍이 보이는 월정교를 바라보며 경주를 말하고 휴식을 한다.


음 코스는 동궁과 월지 연꽃을 보러 갔다.  그곳에서 연꽃 속에 취해 '꽃보다 너'가 되어 사진을 남기고

대릉원 주변에 있는 경주 명물이 된 십원빵을 주전부리한다. 그즈음 경주 하루 여행은 마무리가 된다.


1박 2일 산죽마을 한옥호텔


산죽마을 한옥호텔에서 숙박을 했던 날은 밤이 좋았다. 어스름해진 시간 별채반 교동쌈밥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동궁과 월지로 갔다. 동궁과 월지의 야경은 경주 최고의 야경 촬영지다. 우리도 그곳에서 야경을 담고 그 밤을 즐겼다. 그 밤의 끝은 신중년들의 폭풍수다가 제 맛이다. 그 시간은 무장해제다. 술잔을 부딪히며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에 희로애락을 더해 여행의 찐 맛을 낸다. 다음날 이른 시간에 출발해서 한옥카페 바실라에 해바라기꽃을 보러 갔다. 오픈 전이라 사진만 찍고, 길 건너 카페 로드 100에서 모닝커피를 마셨다. 시그니처 오션라테의 특별한 맛을 보고 긴 수다를 한 다음 함양집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서출지 여행은 수많은 이야기와 풍경을 간직하고 1박 2일 산죽마을 여행으로 끝났다. 7번의 서출지 여행은 같은 코스로 당일 여행을, 1번은 1박 2일 신중년들의 특별한 여행을 했다.


경주는 언제 어딜 가도 좋다. 그중에 제일은 서출지다. 서출지 여행이 좋은 이유는 고즈넉한 서출지의 풍경과 무량사의 돌담과 작은 마을의 골목길 정서와 여기당의 맛과 카페 서오의 멋이다. 더하여 이름난 여행지가 근거리에 있어 편안한 여행이 된다. 특히, 올해는 부용초가 만개한 동궁과 월지가 들썩거렸다.


두 번째 여행지, 영혼을 앗아간 숭문대 특별기획전시 '실감 월성 해자'

숭문대 특별기획전시 실감 월성 해자


학리항에서 가을을 맞이하면서 올 가을은 어디에서 행복할까, 어디로 갈까 벌써 가을 여행이 기다려진다. 10월에 한 번도 간 적 없는 부여로 가려고 숙소를 예약했다. 백제의 땅 부여를 밟아볼 요량이다.


2월 말부터 시작된 매주 토요일 신라 천년의 시간 여행 중에 숭문대 특별기획전시를 다녀왔다. 지난번에 교동면옥에서 식사를 하고 박물관 가는 길에 공사를 하고 있어서 여기는 어떤 건물이 들어설까 하고 궁금했는데, 어느새 완공을 하고 문을 열었다. 벼르다 방문을 했다. 숭문대 기다란 파랑 간판은 시민들의 눈에 낯설다. 7월 22일 문을 열어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하고 특별기획전시 '실감 월성 해자' 전시 중이다.



10시에 도착해서 세미나실에서 간단한 실내 해설을 듣고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전시실로 향했다. 제1 전시실 커튼을 열어젖히자 영롱한 사계절 영상이 영혼을 앗아갔다. 전시실 모퉁이에 마련된 푹신한 의자에 앉아 사계절 영상이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 영상에 빨려 들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영상은 사계절 안으로 관람객들을 데리고 간다. 가상세계의 꽃피는 봄날은 꽃가루가 흩날리고, 여름은 무성한 초록을, 가을의 낙엽 떨어지는 풍경이 한 편의 영화보다 감동이 깊다. 겨울 영상은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듯 영롱했다. 특히, 가을 영상은 감성을 건드린다. 여행자는 그 가을의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진을 담아 카톡 메인에 올렸. '올가을 행복할 거야' 문자까지 넣어서. 사진 속 낙엽을 보고 올가을은 월성에서 사각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그곳에 머물고 싶었다. 가을 행복을 예약했다.


제1전시실 가을 영상

그곳에, 가상세계 속으로 들어가 뛰고 뒹굴고 울고 웃는 아이들의 소리가 참 좋았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섞인 "을이다" 하는 서툰 발음이 얼마나 좋았던지,  '참 좋다. 여길 오길 잘했다' 혼잣말이 나왔다.


이어 1 전시실과 2 전시실 사이의 작은 공간 통로전시는 월성해자에서 출토된 유물을 영상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토우와 배 모양 목제품, 가시연꽃 씨앗, 곰 뼈 순서로 상영되었다. 또 복숭아 씨앗이 꽃으로 변했다.


제2전시아이들의 천국이다. 자연 속에 동물들이 실물크기로 아이들을 이끈다. 아이들은 동물을 따라달음박질 한다. 서로 먼저 가서 만져보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모습이 아름답다. 아이들이 동물과 호흡을 맞추고 역사 속 가상세계에서 미래의 시간으로 아이들의 시간이 흐른다. 신중년은 그곳에서 아이들의 동선을 따라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지켜봤다.


그 외에도 가상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월성해자 발굴 조사 영상도 볼 수 있다. 신라월성연구의 모든 내용들이 조사 성과를 토대로 제작되었다고 한다.(숭문대 실내 해설 및 안내 책자의 내용 참고)


숭문대를 나오면서 내 영혼을 머물게 했던 서출지와 영혼을 앗아간 숭문대 특별기획전시 '실감 월성 해자'는 올해 최고의 여행지로 기억하면서 누군가 여행을 물어오면 서출지와 숭문대를 추천하고 싶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깊은 가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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