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일 Feb 15. 2021

신박한 정리 내가 해줄게!

나의 마음이 느슨하게 전달되기를


의뢰가 들어왔다.

의뢰인은 일이 바쁜 맞벌이 부부로, 도저히 시간이 되지 않으니 대신 아이의 방 한 칸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미리 방 안의 사진 세 장을 받았다. 한쪽 벽면에는 5X3 사이즈의 커다란 책장이 있었으며, 연령대에 맞지 않는 책들이 칸마다 직렬과 병렬의 형태를 반복하며 쌓여 있었다. 베란다 유리문에는 아주 오래된 듯한 단어 브로마이드가, 바닥에는 갈 곳을 잃은 듯한 장난감들이 흩어져 있었다. 피아노 위에 올려진 잡다한 물건들과 시즌이 지난 크리스마스트리로 방 안은 더욱 어수선해 보였다.


 



약속한 당일, 주어진 시간은 4시간 정도.

도착하자마자 200여 권의 책들을 출판사, 순번대로 정리하여 사진을 찍는 일부터 시작했다. 전집이었지만 빠진 책들이 많았고, 사용감이 있는 상태여서 무료로 나누기로 했다. 의뢰인은 당근 마켓을 이용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에 앱 사용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다행히 책을 받기를 희망하는 분이 바로 나타나 순조롭게 책을 비울 수 있었다. 가벼워진 책장을 들어 올리자 의뢰인이 느꼈을 그간의 고민만큼 먼지들이 쌓여있었다. 위위윙- 청소기의 흡입력에 앞으로의 의지까지 더해 개운하게 빨아들였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손이 위쪽까지 닿을 수 있도록 책장을 3X5상태로 눕히자, 방 안이 한결 차분해지고 안정감이 느껴졌다.





내친김에 서비스로 거실도 정리했다.

거실 책장의 남은 책을 방으로 옮기고 나니 이번에는 거실 책장이 필요가 없어졌다. 큰 가구는 비우는 일은 쉽지 않아 베란다의 부족한 수납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밖으로 빼냈다. 어마어마한 양의 장난감과 옷, 잡화들은 시간이 많지 않은 의뢰인을 위해 택배로 기부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거실에 있던 큰 테이블도 공부 책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방 안으로 옮겼더니 거실까지 환해졌다. "30평대가 40평으로 보이네~" 부부의 기뻐하는 마음만큼 집 안이 더 밝아 보였는지도 모른다. 비우는 것보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집 안으로 들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해 주었다. 이제 방법을 알았으니 앞으로 잘해보겠다는 단단한 다짐이 돌아왔다.





아이 방의 주인이 왔다. 나의 조카이다.

정리는 내가 먼저 제안한 것이기도 하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조카를 위해 이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했었다. 언니 부부는 일이 바빠서 일주일에 하루도 온전히 쉬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나도 아들 둘 독점 육아 인생으로, 조카까지 잘 챙겨줄 수 없어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어린 시절까지 이어진다. 자주 아팠던 엄마와 완고했던 아빠보다 의지하게 됐던 두 살 위의 언니에게 마음이 빚이 있었다. “어렸을 때 너희들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어~” 시끌벅적한 손주들을 보며 어느 날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게 가능했던 건 언니가 나보다 착하고 배려심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을 하고 각자의 일과 육아, 시댁일로 자주 연락을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서로 서운해하지 않는다. 언제든 힘들 때면 맞닿을 수 있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눠온 우리는 ‘자매’이니까.







언니 집은 아주 오래된 아파트이다.

은색의 알루미늄 샷시가 앙상한 뼈대처럼 드러나 있어서인지, 조카는 이 방이 제일 밝은 공간임에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하얀색의 면 커튼을 골랐다. 도착하자마 제일 먼저 세탁기에 돌리고, 정리가 끝난 마지막 단계 커튼 수선에 들어갔다. 쓰다 남은 수선 테이프와 다리미를 집에서  챙겨 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커튼으로 완성된 방 안을 본 조카는 “으아~ 내 장난감들 왜 가져가는 거야?~” 투덜거리는 듯했지만, 그 날 저녁 남겨진 소중한 장난감들을 책장에 하나씩 진열했다고. 무서워하던 이 방에서 처음으로 잠까지 잘 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카보다 내가 더 행복했다.








사실 이번 청소에 숨은 공신은 따로 있었다.

고장 난 방문 손잡이를 다시 달고, 커튼레일을 드릴로 고정시키고, 무거운 가구들을 옮기며 도와준 우리 남편. 그리고 더더더욱 좋았던 건, 이번 청소의 긍정적 에너지가 우리 집에도 이어져 흘러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다음 날 남편은 베란다의 묵은 짐들을 스스로 꺼내기 시작했다.



청소 끝에 산뜻함은 마음에 쌓였던 먼지까지 쓸어내고 찾아오는 감정은 아닐런지. 물건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건, 어지러운 마음을 바로잡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밝고 반듯해진 마음이 호수의 물결처럼 옆으로 잔잔히 퍼져 가는 것이다.



나는 그저 기운을 후후- 불어넣고 싶다.

청소를 하고 싶은 마음이 힘껏 이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우리 집 베란다도 깔끔해졌다.



이전 05화 너무도 다른 우리의 당근 사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