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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지기 Oct 07. 2021

너무도 다른 우리의 당근 사용법


당근을 끊었다, 라기보다는 잠시 쉬고 있다. 아마도 저번에 겪었던 일이 아직 마음에 남아있는 듯하다. 아이들의 작아진 옷과 마스크를 무료 나눔으로 올렸던 날. "(당근) 저요~!" 명쾌한 알람이 바로 울렸다. 비대면이지만 날짜와 대략적인 시간을 정하고 복도에 놓아둔 물건 사진도 보내 드렸다. 하지만 나눔의 기쁨과 홀가분함도 잠시였을 뿐. 약속한 시간이 한참을 지났음에도 종이 가방은 그대로 있었다. ‘편한 시간에 가져가셔도 돼요~’라는 나의 마지막 메시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약속 날짜보다 하루 이틀 지나는 것쯤이야 괜찮지 뭐- 하며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삼일이 지나도 그대로다.


'언제 오실 수 있나요?'

'이번 주 일요일에 갈게요!'


주말이 지났건만 종이가방은 처량하게 놓여 있었다. 마치 시련이라도 당한 듯한 이 기분은 뭘까.



'아직 물건을 안 가져가셔서요.'

'네. 오늘 오후에 갈게요!'



다음 날 씁쓸한 기분으로 종이가방을 집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그 어떤 메시지도 없었다. 채팅창을 나오며 당분간 당근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몇 시에 퇴근해?”

“이따가~”

“그러니까 몇 시?”



약속 시간에 철저한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 항상 기다리는 편이다. 그러니 10년째 ‘이따가’로 응수하는 남편을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진심으로 “ 우리는 당근에서 만나면 안 될 사이야!!” 말하곤 한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나의 예민함에서 나사 하나를 풀어 줄 사람이기도 하니. 세상사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그러니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이 물건과 인연이 없나 보다 넘기는 수밖에 없다. 나에게 시간이란 정확한 시침과 분침의 숫자 조합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렵이나, -즈음 같이 막연하게 흘러가는 구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끙끙거리며 답답해하지 말고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 더 따뜻하고 좋은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남편이 조용히 당근에 입문했다.

어느 날 침대에 엎드린 채 남편은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익숙한 사진 배열이 당근임에 틀림없다. 캠핑 텐트. 캠핑 전등. 아이스박스 등등. 주말마다 짧고 은밀하게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또 뭐 사 왔어요!" 퇴근길 남편의 손에 캠핑 용품들이 들려올 때마다 베란다 수납공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물건을 팔거나 나누기 위해 당근을 이용하지만, 남편은 오로지 사들이는 용도로만 이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입고와 출고가 미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으니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이제는 당근의 또 다른 순기능을 알려줄 때가 왔다.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장점 외에도 다른 사용법이 있다는 것을. 집으로 들어올 때마다 현관 앞에 놓인 파란 자전거가 마음에 걸렸다. 할아버지가 사주신 자전거가 작아져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태는 괜찮지만 조금 오래되었으니 팔기보다는 나눔 하기로 남편과 의견을 모았다.



“나 요즘 당근 안 해. 남편이 올려 줘!”

“그런데 어떻게 올려?”



플러스 버튼을 눌러 글 쓰는 방법을 알려주니, 몇 문장 쓰기도 귀찮은지 다른 글을 복사해 오려한다. 결국 글은 내가 써주고 최종 등록만 남편에게 맡겼다. 그런데 이상하다. 올린 지 한참을 지났는데 왜 핸드폰이 조용할까?




“알람 소리로 바꿔 놨어?”

“아니. 내가 확인하고 싶을 때 하니까!”



진정 자신만의 속도로 사는 사람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3개의 메시지가 도착한 상태다. 제일 먼저 연락 온 분과 약속을 잡았다. 약속 시간 5분 전에 남편 등을 떠밀어 내려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잘 나눴어?”

“응! 이렇게 상태가 좋은데 왜 무료로 나눠주냐고 하시던데?”



가끔 그날이 생각난다. 아이들이 읽지 않는 책을 무료로 나눈 날, 자전거 바구니에 과자 두 봉지가 살며시 놓여 있었다. 고맙게 잘 읽겠다는 거래 후기도 도착했다. 이후 나도 무료로 책을 받을 기회가 생겼고 문득 그 날의 일이 떠올라 아이들과 함께 과자를 몇 봉지를 사서 갔다. 그렇게 물건이 쓸모를 되찾아가는 과정에서 마음까지 오고 가면 더없이 행복하다. 공간이 비워지는 가벼움은 보너스처럼 따라오는 것일테고.




우리 아이들이 탔던 파란 자전거가 새로운 주인을 만나서 쌩쌩- 달리고 있겠지. 부디 남편의 당근 온도가 무럭무럭 올라가기를.


이제 남편에게 당근 바통을 넘겨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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