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탁, 탁’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분명 집에 나 혼자 있는데.
정체불명의 소리를 따라가 보니, 작은 아이 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음? 저게 뭐지?’
시력이 좋지 않은 눈은 필사적으로 보기 위해 더 가늘어졌다. 기다랗고 하얀 형체가 바람에 부딪혀 나는 소리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스크 고리! 며칠 전 내가 장 보러 간 사이,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신이 나 있었다. 천장 형광등에서 바닥까지 연결된 고리를 보면서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까르르- 웃고 있었다. 기발하다고 해야 할까, 엉뚱하다고 해야 할까. 남편의 아이디어는 가끔 그 경계선에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잘못 잡아당겨서 형광등 떨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 한 마디에, 고리들이 이사를 왔다.
마치 처마 밑 풍경처럼. 커튼 봉에 매달려 벽에 몸을 부딪히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얀 플라스틱일 뿐인데, 마치 담쟁이덩굴처럼 의연하게 엮여 살아있는 듯했다. 그 모습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이 고리를 동전처럼 모았다. 어딘가 요긴하게 쓸 일이 있을 거라며. 엄마를 닮아서일까? 쓰레기가 되기 전에 살려보겠다며 도자기 컵에 차곡차곡 담았다. 그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도대체 저 많은 걸 어디에 쓰려고? 수북이 컵 위로 쓸모를 잃은 채 쌓여 있던 고리들이 이렇게 변신한 것이다. 큰 효용을 없을지라도 조금 다른 모습으로 잠시 즐거움을 준다. 빛과 바람이 들어오는 창가여서 다행이다. 미술 작품이 별건가! 한 동안 전시회를 열어야겠다.
사실 이 고리들은 이전에도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어쩌다 컵이 엎어져 사방으로 흩어져 있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번식을 하는 건지, 약 올리듯 하나씩 나타났다.
‘또 치워야 해!!!’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말이, 가끔 슬프다.
물건은 죄가 없는데. 제자리에 두지 않는 주인들의 게으름이나 번잡해진 마음이 문제인 것을. 언제나 그들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는데, 왜 우리는 화를 낼까? 그래서 무언가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때, 안 좋은 마음이 일면 잠시 다른 일을 한다. 애꿎은 물건에게 분풀이를 하고 싶지 않으니까.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차분히 하나씩 정리하고 싶다.
‘감자칼이 하나가 있었으면...’
물건을 못 사는 재주는 이럴 때 쓴다. 필요하기도 하지만, 없어도 되는 것이라면 일단 기다려본다. 머릿속 한 구석에 넣고 지내다 보면 우연히 만나기도 하니까. 몇 달 후인가, 지인 집에 놀러 갔을 때 두 개의 감자칼을 발견했다. 깔끔하고 세련된 검은색은 사용감이 있었고, 장난감처럼 가볍고 빨간색은 깨끗하지만 외로워 보였다. 지인은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니, 좋은 쪽인 검은색을 권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어디에선가 사은품으로 받았을 것 같은 이 빨간 칼을 가지고 왔다. 그래! 괜찮지! 쓰임을 다할 수 있는 상태면 충분하다고. 모든 물건이 색을 맞추고 아름다울 필요가 있느냐며. 아무 생각 없이 감자를 깎다가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그렇게 가끔씩 예쁘지 않은 것들을 예쁘게 보는 연습을 한다.
우리 집에는 예쁘지 않은 트리가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남편은 촌스럽고 애매한 크기의 트리를 가지고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들지 않아, 언제 팔아치울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새 집에서도 우리는 함께하게 될 운명이었다. 이사는 뜨거운 여름이었고, 한 여름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리고 몇 번의 성탄절이 더 흘렀다. 아이들은 성탄절 시즌이 되면 학교, 유치원에서 여러 가지 소품들을 만들어 왔다. 그 정성으로 나무는 더 풍성해지고, 소중한 추억도 함께 걸렸다. 호호- 하얀 입김이 나오는 계절이 되고, 한 해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갈 때쯤이면, “이제 한 번 슬슬 꺼내 볼까?” 겨울 식구처럼 생각이 나는 크리스마스트리. 분명 물건은 그대로인데, 물건에 대한 나의 시선은 달라져 있었다.
물건은 죄가 없다고.
크리스마스트리가 내게 알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