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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일 Feb 16. 2022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물건들


고장난 장난감을 기부하세요



어느 날, 로봇 장난감의 왼쪽 팔이 부러졌다. 첫째가 4살 즈음이었을까. 친척 삼촌이 사주었던 5단 합체 변신 로봇 중에서 가장 크고 멋진 스톰 X 였다. 아이는 난생처음 자기 몸집보다 더 큰 상자를 껴안고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때의 일을 지금도 기억하며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한 스톰 X. 온갖 격렬한 전투에 참전했을 베테랑 로봇의 부상은, 엄마인 내게도 속이 상한 일이었다.




팔과 몸체를 연결하는 플라스틱 부분이었다. 강력 본드를 이용해 서툰 솜씨로 붙여 본 들, 다시 쉽게 떨어질 좁고 연약한 부분이다. 정말이지 난처했다. 온전한 장난감이야 나눔 또는 기부하면 되지만, 대체 고장 난 장난감들은 어찌해야 할까? 고민에 휩싸이다가, <내 손 안의 분리수거> 앱을 열어 보았다. 늘 결론은 이렇다. 2종류 이상의 재질이 혼합되면 재활용이 어려우므로 종량제에 담아서 배출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섞이면 일반 쓰레기로 직행해야 하는데. 이 로봇만큼은 그런 서글픈 신세를 면하게 해 줄 방법이 없을까!




고장 난 장난감도 기부가 가능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택배로 선불로 보내면 수리, 소독, 재포장하여 취약계층 가정이나 아동기관에 전달하기도 하고, 업사이클링 방법을 연구하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국내에 매년 버려지는 플라스틱 장난감은 무려 1조 1000억 원어치(12만 kg)로 추정되고, 순환, 재사용되는 장난감은 40% 미만이라는 현실도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얘들아, 장난감 기부하자!”


아이들과 함께 장난감을 정리했다. 안 쓰는 것, 유치원에서 받은 것, 고장 난 것들을 선별했다. 그리고 이 장난감들을 새로 사거나, 받았을 때의 마음을 떠올려 보도록 했다. 앞으로는 장난감을 사는 일에 신중하고, 부디 조심히 쓰기를 바란다는 잔소리도 살며시 흘려보내며, 장난감을 상자에 담아 꼼꼼히 테이프를 붙였다.





남편은 한 달에 한 번 선물 상자를 가지고 온다. 대게 과일 선물로 보자기로 곱게 포장되어 있다. 딱 한 번 상자를 감쌌다가 버려지는 보자기가 아까워 차곡차곡 접어 모으다 보니, 어느새 9장이 되었다.



나에게 쓸모 없어진 것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당근 마켓에 검색해 보니, 보자기 대부분이 나눔 완료로 표시되어 있는게 아닌가. 글을 올리자 빠르게 알람이 울렸다. 그분은 갑작스레 포장할 것이 생겨서 보자기를 찾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저 보자기의 사이즈를 알려드리고, 종이가방에 가지런히 담아 문 앞에 내어드릴 뿐인데. “너무너무 잘 쓸게요” 따뜻하고 친절한 후기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얼음팩은 주로 어머니가 택배 보내주실 때 함께 따라오는데. 가까운 곳에 수거함이 없어서 냉동실에 보관만 하고 있었다. 아이스팩은 당근에서도 나눔 완료 확률이 매우 낮았다. 아마도 인터넷 배송이 많다 보니, 집집마다 넘쳐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정육점에도 아이스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가까운 정육점에 먼저 전화로 여쭤보았다. 흔쾌히 가져다 달라는 답변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아이스팩은 아직은 세상을 돌면서 자신의 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물건들의 쓸모를 되찾아주는 일. 물건들을 가야 할 곳으로 보내는 과정 속에서 생각할 기회를 얻고 배우게 된다. 또한 그것을 글로 옮기는 동안, 어떠한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에게 로 되돌아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물건들을 완벽히 통제하지 않는다. 어떤 물건은 떠밀리듯 흘러들어오고, 어떤 물건은 직접 가져오기도 한다. 물려받았지만 신지 못한 신발과 옷은 함께 모아서 기부하거나 나눔한다. 집 안에는 유예기간을 가진 물건들이 꽤나 있다.



친정집에서 유물급 핸드폰을 발견했을 때에도 집으로 가져왔다. 부모님은 인터넷을 할 줄 모르시니, 버리는 방법에 어려움을 느끼고 계속 보관 중이셨던 것이다. 나눔폰으로 택배보내는 일은 조금 품은 들지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내 핸드폰에는 물건 사진들이 많다.

대게 온전하지 않은 것들이다.

물건들의 증명사진을 찍다 보면

새롭고 흥미롭고 때론 슬프다.



새것에서 헌 것으로,

흐르는 시간을 머금고 낡아지는 물건들.


비록 숨이 붙어있지는 않지만,

조금 더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물건의 가능성을 읽어내면서,

나의 쓸모도 발견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고장 난 장난감 택배 기부 가능한 곳들


https://www.kogongjang.com


http://www.tru.or.kr



https://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2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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