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일 Feb 23. 2022

손 닿는 곳에 기쁨이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갖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가질 수 없는 예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내려놓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물건을 정리하면서 마음이 나아진 건지, 마음을 챙길 준비가 되어서 물건을 정리한 건지도 사실 모호하다. 그래도 이것만은 알 듯하다. 물건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마음이 투영된다는 것. 흐트러진 물건을 보고 화가 인다면, 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주위의 물건을 가만히 바라볼 때가 있다. 지금 내 마음은 어떠한 상태일까.




먼슬리만 남긴 과거의 다이어리들


나에게는 마음에 딱지가 앉았던 시간이 있다. 여러 감정들이 상처처럼 굳어져 단단해진 딱지였다. 보기도 싫고, 어서 빨리 떨어져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에 깔끔하게 떼어 버리면 시원할 텐데. 하지만 묵힌 감정들을 섣불리 뜯어내 봐야 또다시 피가 날 뿐이니 아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 감정들이 해체되고 가벼워지기를 기다리며. 하나씩 물건을 정리하는 일이 마음에 위로를 건네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11년 치의 다이어리를 모아 사진을 찍었다. 사실 일상의 기록들은 특별한 게 없다. 그날의 작은 이슈, 생각, 먹은 것들. 게으름에 위클리는 텅텅 비어있다. 먼슬리 부분만 토도독- 뜯어내고, 이제는 먼슬리와 메모로 조합된 얇은 다이어리에 정착했다. 과거의 다이어리들은 커버를 벗겨 종이뭉치가 되었다. 깔끔하고 고급진 가죽 다이어리로 통일감이 있다면 더 좋았을까. 이제는 괜찮다. 모든 게 색을 맞추고 심미적으로 아름답지 않아도 충분하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그 안에 담긴 것들. 내 손이 닿았던 이 먼슬리의 네모 칸들이, 하루 하루 수고 많았다고. 말해주었으니까.




2011-2022


그렇게 물건들을 바라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물건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주고 받는 것들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알맞게  조율하고, 담아 두었던 감정들도 풀어나갔다. 그리고 더 넓게, 그 너머의 환경이야기까지도 알게 되었다. 물건들과의 이야기가 하나씩 쌓이다가, 구슬 꿰듯 이어가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미니멀, 맥시멀, -트/ -터 / -주의자/라는 프레임을 입힐수록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다. 초점이 자꾸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텅 빈 공간만이 좋은 것도 아니고, 멋진 살림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쓰레기에 대한 관심이 삶을 대변해 줄 수도 없는데. 이 물건 탐구에서 내가 찾는 이야기는 뭐였을까? 브런치 북의 마지막을 꿰매다가 빙글빙글 맴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건에도 품위가 있다면, 매겨진 가격이나 브랜드가 아니라, 그 물건을 다루는 방식, 대하는 마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 아닐까.




그리고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 곳은 그곳이었다. 언제나 배우고 싶은 사람. 바로 타샤 튜더 할머니이다. 손뜨개도 못하고, 가드닝에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아,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이 막연하고 대책 없는 동경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유효하다.





'손 닿는 곳에 기쁨이 있다'


타샤 튜터 할머니 책에서 읽은 이 문장을.



자신이 가진 것들에 애정을 갖는 일.

부지런하게 일상을 가꾸고 온기를 채우는 삶.



내가 가진 물건들과 함께하며,

배우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