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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일 Feb 09. 2022

아빠의 옷장에서 배운 것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참석하게 된 결혼식.

2019년 가을 무렵이 마지막이었고, 겨울에 있는 결혼식은 실로 오랜만이다. 마흔이 넘은 데다 코로나로 인해 결혼식 갈 일이 더욱 없어졌는데.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과 축하의 마음이 잠시 일다가, ‘아참, 그런데 뭐 입고 가지?’ 현실적인 고민에 머리가 멍해졌다.




정장을 잘 입지 않는다. 좀처럼 입을 기회가 없거니와, 격식을 갖춘 옷차림보다는 캐주얼한 스타일이 편하고 잘 어울린다. 애 낳고 처음으로 10센티 힐을 신고 며칠을 고생했다는 친구의 말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벌써부터 정장에 갇힌 듯, 온몸이 쑤시고 애꿎은 발바닥이 아파오는 기분이다. 그만큼 정장과 구두는 내게 어려운 존재이다.




결혼식 날이 다가오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시가 친지의 결혼식이기에 대충 입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인데, 연일 한파가 계속되니 더 걱정스럽다. 옷장을 연신 열어봤자 패딩 아닌 세련된 코트가 나올 리도 없고. 급한 마음에 당근 마켓 스크롤만 한없이 내렸다. 합리적인 가격의 옷들이 많았지만, 사진상으로 옷의 상태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입어보고 살 수 없으니 도통 결정이 서질 않는다. ‘색상은 나한테 어울릴까?’ ‘너무 크거나 길면 어쩌지?’ 반품, 환불이 어려운 중고 거래는 신중해야 하는데. 조급함에 또 적당한 옷을 사게 되진 않을까, 한 번 입고 또 여러 해를 넘길 코트의 신세까지 염려하다가 마음을 접고 관심 목록들을 지워버렸다.




일단 겨울 정장이라면 둘 중 하나다. 결혼 예복으로 구입했던 모직 소재의 검정 플레어 원피스. 또 하나는 시어머니께서 사주신 슬림 라인의 원피스인데, 이건 어떨까?



5년 전 즈음, 옷들을 정리할 때 이 원피스는 남겨 두었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셨던 옷인데 자세히 보면 마감이 깔끔하지 못하다. 매끄럽지 못한 실밥 처리와 치마 옆 라인이 미묘하게 틀어지기도 했다. "이거, OO한테 잘 맞을 것 같아서 샀어!" 그런데 정말 잘 어울렸다. 심플한 디자인도 좋았지만, 입었을 때 맵시가 살아나는 그 ‘핏’ 이 마음에 쏙 들었다. 아이들을 낳고 정장 입을 일이 더욱 없어지고, 비록 브랜드 옷이 아님에도 지금껏 옷장 속에 남아 있는 이유다.




딱 하나 있는 재킷도 꺼내 본다. "혹시 괜찮으면 이거 입을래?" 시누이 언니가 좋은 옷인데 작아져서 못 입게 되었다고 했다. 행여나 입던 옷을 건네 마음이 상하지는 않을까 미안해하며 조심스레 물어왔다. 과연 입을 일이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받았는데.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 우연찮게 잘 입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다시 입을 기회가 찾아왔다. 부디 날씨가 조금 더 풀리면 좋으련만!




함께 입어보니 원피스와 재킷의 단차가 적정하다. 검정과 네이비의 미묘한 차이는 머플러 하나 두르고 커버하면 되지 않을까 궁리하면서. ‘그래. 이 정도면 됐지. 뭐!' 마지막 카드로 친구의 코트를 빌려 입을까 했는데, 오며 가며 빌리는 시간과 세탁 비용이 있으니 이 편이 더 낫겠지 싶었다.



"이렇게 입으면 괜찮을까?"

"응. 괜찮은데?"



때아닌 런어웨이에 당황하지 않고 단번에 돌아오는 대답은 나쁘지 않다는 뜻이다. “그냥 새로 하나 사!”라고 남편은 쉽게 말하지 않는다. 적당하게 입고 버리는 쇼핑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걸. 이해하고, 지지해 주고, 함께 변해가는 남편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2년 동안 옷을 사지 않으면서 깨달은 것들은. 사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배울 수 있었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20년 넘게 어쩌면 30년 가까이 함께 했을 그 어릴 적 아빠의 옷장에서.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말이다.



그 당시 누구나 그랬듯. 동네에 넉넉하게 먹고사는 집이 몇이나 되었을까 싶지만. 우리는 가난했다. 그래도 엄마는 생활비에서 조금씩 돈을 모아 옷을 사기를 좋아하셨고. 반면 아빠는 늘 비슷한 옷들을 입고 다니셨다. 아빠는 옷이 별로 필요 없을 거라고. 어린 나이에 우리들은 너무도 당연시했던 건 아닐까.



그럼에도 아빠는 멋쟁이셨다.

비싼 옷도 아니고 따로 세탁소에 맡겨 관리하는 것도 아닌데, 늘 반듯하게 다림질된 바지와 시간이 흘러 얼룩지고 색이 바랜 무스탕 조차도 전투복처럼 멋져 보였으니까. 아빠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들에 대해 잘 알고 계셨다. 색감, 재질, 디자인까지. 그리고 아주 오래오래 입으셨다.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쇼핑하는 아빠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언니와 내가 일을 하고 자립할 정도로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는. 그리고 어느 날엔가, 아빠는 종이가방을 들고 오셨다. 세 장의 셔츠와 바지를 주섬주섬 꺼내는 아빠의 표정이 밝고 가벼워 보였다. 아빠 자신만을 위한 첫 쇼핑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옷에 대한 취향이 확고하셨다.

언니와 내가 백화점에서 신중을 기하며 고른 옷들을  가슴팍에 밀어 드렸지만, 며칠 후 기어이 고객센터에 가서 환불받았다고 당당하게 알리셨다. “아빠는 어쩔 수 없나 봐...” 사실 우리가 짐작했던 시나리오였음에도. 꼭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 확고한 아빠의 취향 아래 숨겨진 또 다른 이유 때문에. 이제 그만 자신에게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마시라고. 그럴 때도 됐다고. 알려 드리고 싶었다.




친정에 들렀을  아빠의 옷장을 몰래 열어 보았다. 예전 그대로, 보랏빛 옷걸이가 보였다. 이십 년은 족히 되었을,  변하지 않는 플라스틱이 되려 안쓰러워 보였다. 이제는 그만 보기 좋은 것으로 바꿔도 좋을 텐데. 주름 하나 없이 걸려 있는 바지들과 외투  가지가 쓸쓸해 보였다. 옷장 아래 놓인 바스켓에 담긴 약통들 때문이었을까. 왠지 모를 슬픔이 엄습해 시선을 돌리듯 옷장 문을 닫았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는데, 차마 찍을 수가 없었다.




취향에 맞게. 가지런히. 반듯하게. 오래도록.


그래도 하나 덧붙여보자면,

때로는 자신만을 위한 새로움도 받아들이면서.


왠지 아빠의 옷장을 닮아가고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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