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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일 Mar 16. 2021

엄마는 분리수거가 취미거든!

너구리 엄마의 취미는 정말 빨래일까?




아이들이 좋아하는 100층짜리 집 시리즈.


지하 100층짜리 집에는 땅과 관련된 10가지 동물들이 나온다. 그중 지하 10층에 사는 동물은 너구리 가족이다. 신나게 진흙 놀이를 하다가 더러워진 옷을 주인공 '쿠'가 걱정해주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돌아오는 너구리의 대답이란.


‘걱정 마! 우리 엄만 빨래가 취미거든’


‘뭐라고??? 어떻게 빨래가 취미일 수 있어!!!' 이 책을 어림잡아 오백 번은 넘게 읽었을 것이다. 첫째가 어렸을 때부터 둘째가 일곱 살이 된 지금까지 잠자리 독서의 단골 책이었으니. 하지만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매번 심기가 불편해지면서 너구리 엄마의 고단함을 대신 항의하고 싶어 진다. 너구리 엄마의 취미는 정말 빨래였을까?



어느 날, 첫째에게 의견을 물었다.

고단한 가사 노동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만큼 크지는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과 함께. 하지만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그건 진짜 너구리가 씻는 걸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먹이도 물에 씻어 먹거든요!”

"으으음? 너구리가 진짜로 씻는 걸 좋아한다고?”



실제로 너구리는 그러했다.

그리고 엄연히 말하면 꼬리에 줄무늬가 있는 건 라쿤이었다. 라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먹이를 물에 씻어먹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뭐든 물에 담가 본다는 것이다. 인터넷 어떤 동영상에서 라쿤은 고양이의 사료를 뺏어 먹고 있었는데, 그런 긴박한 순간에도 물그릇에 헹궈 먹기를 잊지 않았다. 너구리(라쿤) 엄마는 정말로 빨래를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궁금증 해결이다.

토끼가 당근을, 매미 애벌레가 나무뿌리 주스를 들고 있을 때, 너구리 손에 들려있던 거품 나는 스펀지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너구리 엄마의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느닷없이 아들의 질문이 나에게 향했다.


“그럼, 엄마 취미는 뭐예요?"


음. 나의 취미라...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너구리 엄마만큼이나 이상한 취미가 생겼다. 분명 싫어했던 일이 었는데, 지금은 꽤나 즐겨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지게 된 일이...


“엄마 취미는 분리수거!!”






이번주 플라스틱 배출량



아름다운 사람은 버리는 것도 아름다워야 한다



사람들이 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하찮은 일을 취미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취미란 무릇 남들에게 내보일만한 문화적 취향이 담긴 고상한 행위여야 할 텐데 말이다. 물론, 책 읽기도 좋아하고 글 쓰는 일도 즐거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대답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61개국 157개의 나라를 돌며 쓰레기를 관찰한 이야기가 있다. 제목마저도 <쓰레기 책>. 필리핀의 바세코 비치에 사는 아이들은 쓰레기가 반쯤 섞인 곳에서 헤엄을 친다고 한다. 해류의 특성상 바닷물의 종착지여서 각국의 해양 쓰레기가 모여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을 때, 저자는 쓰레기가 모여드는 바닷가를 찾았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이미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듣기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도 누군가는 해야 하고, 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 한 사람쯤 작은 힘을 보태서 이상한 취미를 갖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스트레스가 쌓일  청소를 하면 개운해지듯이, 마음이 바쁘거나 가라앉는 날이면 쓰레기를 차곡차곡 정리한다. 상품의 가격만큼이나 포장 재질이 궁금하고, 환경에 관련된 동영상을 찾아보게 된다. 일요일이 되면  주의 쓰레기를 분류하며 내가 배출한 것들을 되돌아보기. 월요일 분리수거장에 가면 나날이 높아지는 플라스틱 마대자루처럼  숨이 쌓이지만, 그럼에도 어딘가에서 환경을 위해 묵묵히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조금  힘을 내보면 어떨까?




세상에 재미없는 일은 없다.

재미없어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

언젠가는 취미가 좀 더 고상해져서 이렇게 대답할 수 있기를!



"엄마의 취미는 업사이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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