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남편의 양말들이 이상하다.
뒤꿈치와 발목 그 사이에 생겨난 구멍들.
도대체 남편의 발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니, 엄지발가락도 아니고 왜 이 부분이 뜯어져?”
“그거, 구두가 이상해서 그래!”
“구두?”
‘구두를 하나 사야 되는데...’
그제야 떠올랐다. 남편이 허공에 흘려보내던 말이. 그러고 보니 남편은 쇼핑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신없이 북적이는 쇼핑몰에서 무언가를 고르는 일을 어려워했다. 연애시절부터 옆에 붙어 이것저것 대보고 조언해주면 그중 취향에 가까운 것으로 결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의 쇼핑이 더 힘들어진 이유가 있는데...
바로 내가 쇼핑을 안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소비 단식이나 환경 보호라는 명분보다는 가진 옷만으로도 충분해서 무쇼핑 생활 2년이 다 되어 간다. 그래도 이따금 쇼핑몰이란 곳에 갈 때가 있다. 물려받을 곳이 없는 첫째의 옷과 운동화가 필요할 때나, 남편의 셔츠 깃이 낡고 소매가 해질 때 즈음.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그럼 슬슬 다녀와볼까 하는 마음으로.
“ 여기서 놀고 있을게! 잘 다녀와!”
엄마는 아울렛 안에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남편은 목표했던 옷을 골라서 1시간 이내로 쇼핑을 마치고 돌아온다. 이제는 익숙한 우리 집만의 쇼핑 풍경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색상과 편안한 디자인, 좋아하는 브랜드도 생겨서 더 이상 옷 고르는 일이 어렵지 않은 듯하다.
그렇게 구두도 한참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사 왔다.
“드디어 샀어?”
“엊그제 빨리 퇴근해서 샀지!”
“나중에 택배도 올 거야. A/S도 맡겼어!”
“무슨 A/S?”
“양말 뜯어지는 구두. 수선해준대!”
첫째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의 눈이 동그래졌다.
“쓰고 버려! 새로 사면 되지~” 쉽게 얘기하던 남편에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낡은 구두를 매장으로 들고 가 수선 요청을 하는 남편의 모습이라니. 밀려오는 감동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일주일 후 남편의 구두가 도착했다.
양말에 구멍을 내던, 안쪽의 터진 가죽은 잘 말려 박음질이 되어 있었고, 구두굽은 교체되고, 겉 가죽도 반들 반들 윤이 나 있었다.
“오. 괜찮은데?”
다음 날 남편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새 것이 아닌, 익숙하고 정이 든 구두를 신고서.
남자아이들의 무릎은 더 뾰족한 것일까?
바지들의 무릎이 성할 날이 없다. 어쩜 이리도 다채로운 형태로 구멍이 나는지. 작은 구멍은 겹쳐 꿰매면 되지만, 올이 풀리면 번지는 불씨처럼 감당이 안된다. 천으로 덧대는 일은 엉성한 내 솜씨에는 무리일 터. 행여나 바지를 망쳐버리는 꼴이 될 것 같아 선뜻 시도하기 어렵다. 이런 옷들은 정말이지 난감하다. 기부도 어렵고, 아파트 의류수거함에 넣어도 처치곤란 일 것이다.
“아.. 널 어쩌면 좋을까?....”
숙제를 미루듯 옷장 속에 넣고 한 해가 지났다.
계절이 돌고 돌아 갑작스러운 한파가 찾아왔다. 급히 두터운 바지들을 꺼내다가 다시 만난 바지여- 이제 어떻게든 운명을 결정지어야 한다. 그럼 심폐소생술이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가까운 브랜드 매장을 방문하였다.
그날 따라 유난히도 반짝이는 조명 아래서 위풍당당 새 옷들은 반듯하게 걸려 있었다.
“혹시... 바지 수선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에코백에서 두 벌의 바지를 꺼냈다. 직원의 화려한 네일아트 옆에서 “여기 하나, 또 여기 하나요!” 바지 구멍의 존재를 알리는 일은 조금 부끄러웠지만, 친절한 대응에 민망한 마음이 금새 누그러졌다.
이런 손님은 매우 드문지, 직원은 매니저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주의사항들을 확인했다. 상태에 따라 수선비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점과 집으로 배송받으려면 택배비를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 등 이런저런 안내를 받고, 서비스 카드를 성실히 작성하고 돌아왔다. 바지 두 벌은 각각 고유의 서비스 번호를 받고 수선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겠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혼란스럽기도 했다.
옷을 수선하고 수령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매장에 걸려있는 옷을 사는 편이 빠를텐데. 수선비에 얼마를 더 보태면 저렴한 새 옷을 살 수 있을테고. 소비가 곧 미덕인 경제사회에서 나 같은 사람은 괜찮은 걸까?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047/0002319433
하지만 바지 한 벌을 살리는 일의 가치를 알고 있다.
옷이 만들어지고 매장에 걸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탄소 발자국이 발생하는지 안다면. 멀쩡한 옷들이 버려져 쌓여 옷 무덤이 되고, 수출한 개발도상국에서 또 다른 환경오염을 발생시키고. 그마저도 안되면 매립 또는 소각으로 사라지는 현실을 알게 된다면. 그래서 구멍 난 바지를 살려본다. 첫째와 올 겨울을 보내고, 둘째가 2년을 더 입는 일은 궁상맞은 절약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아, 부디.. 더 이상의 구멍은 없길 바랄 뿐이지만.
수선은 환경보호를 위한 급진적 활동이다
2년 전 파타고니아를 읽고 내게 남은 이 한 문장.
고쳐 쓰는 일보다 새로 사는 게 더 쉬운 세상이지만. 소비자가 아닌 소유자로 사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를 배워가고 있다.
소비의 권리만큼 소유를 가치를 알아주는 세상.
얼마나 좋을까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