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눈으로 본 부산, 내가 잊고 있던 도시
오늘의 증상 : 수면제 없이 숙면. 불면 완화. 간헐적 이명은 여전.
갑자기 과민성 대장 증후군 의심 증상까지. 걷는 종합병원 상태.
오랜만에 예전에 함께 일했던 중국인 동생을 만났습니다.
처음 만났을 땐 대학을 갓 졸업한 새파란 신입이었는데,
이제는 박사학위를 눈앞에 둔 전문가가 되어 있더군요.
졸업과 실업을 앞둔 두 여인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어떻게 살까’로 이어졌습니다.
동생은 말했습니다.
“저는 부산이 너무 좋아서, 여기서 계속 살고 싶어요.”
그 말이 어찌나 낯설게 들리던지, 잠깐 멍해졌습니다.
저는 지금 이 도시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어쩌면 현 직장에 대한 복수처럼,
이 도시를 버리고 도망치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요.
그런데 동생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산책하기 좋은 강변, 언제든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는 일상,
혼잡하지 않은 지하철,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
“서울은 너무 복잡해요. 북적북적. 숨이 막혀요.”
그래요, 부산은 살기 좋은 도시예요.
서울보다 겨울엔 덜 춥고, 여름엔 침수 위험도 적고,
지하철도 한산하고, 산과 바다, 강, 온천까지 있는 동네.
게다가 집값도 훨씬 저렴하죠.
하지만 그 말 끝에 저는 조용히 혼잣말을 삼켰습니다.
“그래도 일자리는 서울에 다 있지…”
저는 오랫동안 부산에 살았고, 이곳에서 일했고,
그래서 이 도시의 한계까지 너무 잘 아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살기 좋은 곳’과 ‘먹고살기 좋은 곳’이
꼭 일치하진 않는다는 사실도 체감하고 있죠.
그런데 타인의 시선은 묘하게 저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부산이 정말 그렇게 나쁜 곳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오래된 실망만 붙잡고 있었던 건 아닐까?’
저는 이 도시의 안과 밖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고,
동생은 이 도시의 따뜻함만 간직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 사이에서 저는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떠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살아온 세월의 무게로 도시를 단정 짓는 건,
어쩌면 저 자신에게도, 도시 부산에도
너무 가혹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은 일단 결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그 모든 선택은 잠시 미뤄두고,
그저 이 도시가 좋다고 말해준 따뜻한 사람과
맛있는 음식과 커피 한 잔
그리고 웃음을 나눈 즐거운 시간만 기억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