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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진짜 ‘나’ vs 설정된 ‘나’, 人设(런셔)

오늘 당신은 어떤 '가면'을 쓰셨나요?

by 강호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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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몇 가지 '사회적 가면'을 어쩔 수 없이 장착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우리 집 책상은 일주일에 한 번 닦을까 말까 하지만, 회사 책상은 매일 닦는다거나

집에서는 미루는 것을 미덕으로 삼지만, 회사에서는 근면 성실을 달고 살거나…

이렇게 우리는 매일 '자기 자신'을 연기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이미지 설정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콘텐츠를 기획하고, 나를 관리하죠.


중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한 단어로 표현합니다. 바로 人设(런셔, 인물설정)’입니다.


人设(런셔)가 뭐길래?

人设(rén shè, 런셔)는 원래 人物设定(인물설정)의 줄임말로,

소설이나 드라마, 게임 등에서 등장인물의 외형, 성격, 배경을 설정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과 연예계에서 쓰이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에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이미지나 캐릭터로 의미가 확장했습니다.


'바보처럼 순진한 캐릭터', '꾸밈없는 솔직한 성격', '연애 같은 것엔 관심 없는 순정남/순정녀' 등 다양한 人设(런셔)의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인기를 끌었지요.


그리고 이제는 일반 대중들도 SNS 속 자신을 ‘하나의 캐릭터처럼 설정’하고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힙한 라이프를 사는 도시여자', '자연과 책을 사랑하는 아날로그 감성 남자'…

이러한 캐릭터들은 종종 SNS 피드를 통해 강화되고, 꾸준히 ‘업데이트’됩니다.


人设(런셔)는 왜 탄생했을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회 분위기, 취업, 인간관계, 연애 등에서 ‘인상 관리’의 필요성, ‘팔리는 사람’이 되기 위한 브랜딩 전략…….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만의 人设(런셔)를 만들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애씁니다.

즉 人设(런셔)는 ‘나를 하나의 상품처럼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현대 사회의 압박감이 반영된 현상입니다.


문제는, 이 인물 설정이 현실의 나와 점점 멀어질 때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연기자도 진실된 면모가 드러날 때가 있는 법이죠.


중국에서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人设(런셔)가 무너질 때 '이미지 무너짐'을 뜻하는

‘人设崩塌(rén shè bēng tā, 런셔 벙타)’ 또는 ‘形象崩塌(xíng xiàng bēng tā, 씽샹 벙타)’라는 표현을 씁니다.


예를 들어, ‘청순하고 검소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던 연예인이 사치품 소비 논란에 휘말리면,

“人设崩了(캐릭터가 무너졌어)”라는 말이 나오죠.


이는 유명인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일반인들도 SNS에서 보여준 모습과 실제가 다를 때, 타인에게 실망을 주거나 관계가 어긋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人设(런셔)에 더욱 몰두하며, 진실된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립니다.


한국에도 있다! ‘캐릭터 설정’의 시대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이나 배우들이 특정 ‘이미지 콘셉트’를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나

인플루언서들이 인스타그램 감성을 통해 자신을 브랜딩화하는 것도 人设(런셔)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최근 유행하는 '부캐'도 인위적인 캐릭터 설정이라는 점에서 人设(런셔)와 일부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요.


人设(런셔)는 주로 중국 인터넷과 연예계에서 ‘공적 이미지’나 ‘설정된 캐릭터 붕괴’와 관련된 맥락에서 많이 논의되지만, '부캐'는 본업과 다른 새로운 역할 및 창작 활동을 하는 데서 출발해 더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다만 人设(런셔)나 '부캐' 모두 몰두하다 보면 정체성 혼란이나 거짓 이미지 문제가 나타날 수 있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 시절 유행했던 만화 <유리가면>에서는 배우가 캐릭터에 몰두하는 것을 보이지 않는 유리가면을 장착하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본연의 자아와 다른 캐릭터화된 자아를 만드는 것은 어쩌면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질문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人设(런셔)는 내가 만든 걸까 아니면 억지로 만들어진 걸까?

나는 정말 이 캐릭터를 좋아하나?


가끔은 설정을 내려놓고

그냥 진짜 나를 보여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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