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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진 Oct 19. 2023

우리집에는 MZ가 셋이나 있다

MZ라고 다 같은 MZ가 아니더라



MZ세대 세 명, 그리고 그 다음 세대를 뜻하는 알파 세대 하나. 우리 집에 있는 MZ만 해도 셋이나 됩니다. 그 중에는 저도 포함되어 있죠. 장녀 아래로 동생이 셋인데, 둘은 Z세대고 하나는 알파 세대에 속한다나요. 물론 당사자들은 MZ니 알파니 하는 단어에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대학교 신입생 하나, 중2병이 아직 끝나지 않은 녀석 하나, 그리고 이제 막 제 1기 사춘기에 접어든 녀석 하나. 모아놓고 보면 얼굴들은 다 거기서 거기 같이 생겼는데 성격은 또 제각각입니다. '고집이 세다'는 나 씨 가문의 유구한 특징을 제외하면 말이죠. 다만 성질은 다같이 골고루 더럽습니다. 이건 가족 유전이라 어지간해선 고쳐지지 않더군요.



동생들과 함께 살면서 자의 아닌 자의로 신세대 녀석들의 유행과 취향을 엿보게 되었는데, 십 대 혹은 이제 막 이십 대 초반이 된 이들의 성장 과정을 보면 아주 가지각색입니다. 어느정도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선 안에서 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며 대부분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알려드리고자 해요.



일단 모든 학생들이 그렇듯 학교에 다닙니다. 수행평가와 시험이 주를 이루었던 기존의 학업 방식과는 달리 놀이 및 체험형 수업도 즐기고, 중학교 1학년 때는 '자유학기제'라 하여 시험을 보는 대신 자유로운 문화진로체험을 통해 자기 자신의 진로를 찾는 시간도 갖죠. 이 학습 제도가 정말 진로를 탐색하는 데 도움이 되었냐는 연구 결과는 회의적이지만, 학구열이 과다한 한국 사회에서는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하교 후 집에 귀가해 보는 광경, 긴장이 잔뜩 풀어지고 나태해질 때 그들의 본모습이 보입니다.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다같이 스마트폰을 듭니다. 배터리가 다 방전되도록 죽어라 게임을 하는 녀석도 있고, 쉴 새 없이 넘어가는 숏폼 영상만 보는 녀석이 있는가하면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번갈아하며 하루종일 그림만 그리는 녀석도 있습니다.



방학 내내 부모님이 tv를 보지 않을 때 유튜브가 송출되는 tv는 동생 녀석들의 차지가 되었죠. 넷플릭스 콘텐츠를 구독한 지 어언 석 달, 부모님이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기 위해 tv를 사수하니 녀석들은 다시 스마트폰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뭘 그리 재밌게 보나 싶어 tv에 연결해 둔 제 유튜브 계정을 확인한 적이 있는데요. 제각각의 알고리즘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 방송부터 버튜버라고 하여 3D 모델링에 아바타를 덧입혀 방송하는 유튜버도 있었고, 제가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와 최신 아이돌 K-POP 모음집이 뒤섞여 추천 영상을 죄다 관심 없음으로 돌려놓기도 했죠. 공포 영상을 좋아하는 동생 때문에 영상 썸네일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답니다.



단순 유튜브 취향만으로는 사람의 특징이 갈린다고 할 수 없죠. 제가 동생들을 보고 놀란 점은, 아이패드나 스마트폰을 활용해 영상 편집을 척척 해낸다는 점이었습니다. 어플을 통해 자신이 만들었다고 보여준 수행평가용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중학교 시절 친구와 끙끙 앓아대며 만들었던 방학 숙제용 UCC가 우습게 느껴지더라고요.



다만 한글, 프레젠테이션, 기초적인 검색 서칭에 있어서는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합니다. 막내 동생에게 컴퓨터 부팅부터 가르쳐주던 때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리는데요. 신세대 친구들이 모바일 기기는 잘 다루는 반면 PC 활용 지식은 한참 부족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더군요. 최근 둘째 동생이 PPT 만드는 법을 모르겠다며 주말 내내 칭얼거렸는데, 이 녀석이 대학교에 입학하면 어떻게 될지 참 걱정이 됩니다.



아, 한 가지 MZ세대로서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셋(저를 포함한 넷) 다 마라탕을 참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마라탕 집에 가서 각자 좋아하는 재료를 한 데 넣어 끓인 커다란 마라탕에 계란 볶음밥과 꿔바로우를 시켜두고 먹으면 아주 배부르고 행복하게 먹을 수 있죠. 여기에 디저트로 부모님이 사준 커다란 빽다방 음료까지 먹으면 한 끼 식사 완료. 당도 나트륨도 그득히 채울 수 있는 식단입니다.



형제자매끼리 우애를 다지는 돈독한 시간? 집순이, 집돌이들이라 그런 건 기대하기 힘들답니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집에만 붙어 누워 있는 모습들에, 외출을 좋아하는 엄마는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정녕 학교 말고 이들을 바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수단은 없는 걸까요?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더 심화된 양상. 이것이 비단 MZ세대의 분위기만이 아닌 우리 사회 전반의 풍경이라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변화가 있을지 예상이 되지 않습니다.



또 한 명의 MZ였던 제 시대가 끝나고 나면 저 역시 '꼰대'가 되는 걸까요. 이젠 아득하게 지나가버린 듯한 '라떼' 시절의 추억을 그리워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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