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i et amo. 나는 미워하면서 또 사랑한다
2020년대 전반기 일본 애니메이션을 정의한다면 역시 '걸즈 밴드'일 것이다. 2021년 공개된 영화 <BanG Dream! FILM LIVE 2nd Stage>를 끝으로 뒤안길로 사라질 것만 같았던 걸즈 밴드 애니메이션은 2022년 공개된 TV 애니메이션 <봇치 더 록!>과 2023년 공개된 TV 애니메이션 <BanG Dream! It's MyGO!!!!!>, 그리고 2024년 공개된 TV 애니메이션 <걸즈 밴드 크라이>로 이어지며 전성기를 맞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2025년이 밝아왔고, <BanG Dream! It's MyGO!!!!!>의 후속작으로서 TV 애니메이션 <BanG Dream! Ave Mujica>가 방영을 시작했다. 나는 'BanG Dream!' 프로젝트의 오랜 팬이다. 모바일 게임 <BanG Dream! 걸즈 밴드 파티>의 한국 서버가 런칭되었을 때부터였으니, 벌써 7년 가까이 되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영화 <BanG Dream! FILM LIVE 2nd Stage>를 최고점으로 쇠락해 가던 프로젝트가 TV 애니메이션 <BanG Dream! It's MyGO!!!!!>를 기점으로 중흥하기 시작한 것은 그중에서도 괄목할만한 사건일 것이다(중간에 한국 서버가 문을 닫는 슬픈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기에 록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BanG Dream!' 프로젝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신작 TV 애니메이션 <BanG Dream! Ave Mujica>에 모든 기대를 걸었다. 중흥과 유행의 기류를 이어나가 사랑하는 프로젝트가, 애니메이션이, 음악이 다시금 이어지기를 바랐다. 나의 기대와 바람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3개월이 지나 완결을 목격한 지금, 나는 의문이 든다.
뒤틀린 하늘을 그리며 생각해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TV 애니메이션 <걸즈 밴드 크라이>가 공개된 2024년은 나에게 놀라운 한 해로 기억되었다. 사물이나 배경을 그려내기 위한 보조 도구로 활용되거나, 전면적으로 내세워져도 결국 셀 애니메이션의 작법을 따랐던 기존 3D CG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그야말로 혁명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었다. 'BanG Dream!' 프로젝트의 애니메이션 제작을 담당하는 산지겐의 3D CG 작법은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작법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지만, 분명 어떠한 경지에 도달하고 있는 중이라고.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3D CG가 셀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역사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쪽이라면, 산지겐은 3D CG를 통하여 셀 애니메이션의 '룩'을 계승하고자 한다. 단적으로 캐릭터 모델링을 보아도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디자인에서 벗어나 있지만, 산지겐은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애니메이팅의 면에서도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셀 애니메이션 특유의 프레임 제한을 무시하고 풀 프레임의 움직임을 구사하지만, 산지겐은 여전히 따른다. 이전의 나는 산지겐의 3D CG를 이해할 수 없었다.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벗어나지 않는 듯한 모습이 이상했다. 하지만 2020년대의 절반을 되돌아보며 겨우 알 수 있었다. 산지겐은 3D CG를 활용하여 특징은 모방하고 작화 붕괴와 같은 단점은 원천 차단하여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의 '룩'을 흔들림 없이 계승하고자 한다는 것을.
산지겐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을 때, <BanG Dream! Ave Mujica>는 <D4DJ First MIX>, <BanG Dream! FILM LIVE 2nd Stage>, <BanG Dream! It's MyGO!!!!!>를 이어 '룩'의 완성형에 가까워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산지겐은 <BanG Dream! Ave Mujica>에 이르러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아성에 도전할 수 있을만한 기술력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까지 산지겐에 가장 부족했던 것은 표정 묘사였다. 산지겐은 토에이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다양한 장면에서의 다양한 표정을 항상 묘사하지 못하는 제작사였고(특히 클로즈업 장면), 결국 작화로 때워버리면서 시청자의 몰입을 늘 깨뜨려왔다. <BanG Dream! Ave Mujica>는 이를 보완한다.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여전히 작화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를 제외한, 하이라이트 장면과 라이브 장면에서의 표정은 '탁월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의 묘사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4화에서 드러나는 모르티스와 13화의 라이브를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겠는데, 모르티스의 이중성과 라이브의 격동 묘사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할 표정을 자유자재로, 감정과 상황에 알맞게 묘사하면서 각각 심리 호러와 걸즈 밴드라는 장르를 빛냈다. 애니메이팅이란 연기를 직접 그려내는 행위이다. 또한 연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을 자유자재로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이며, 이를 결정하는 것은 표정이다. 이 지점에서 산지겐은 애니메이션의 오리지널리티인 애니메이팅의 정수를 끝내 손에 넣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BanG Dream! Ave Mujica>라는 작품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생각해 보도록 하자. <BanG Dream! Ave Mujica>는 한 가지 장르로는 정의할 수 없는 작품이다. 기본적으로는 걸즈 밴드 장르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파고들어 보면 심리 호러(이쪽은 홍보 과정에서 사용된 단어이기도 하다) 장르이기도 하고, 감추어진 진실을 파고들어 가는 미스터리 장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BanG Dream! Ave Mujica>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어둡다. 따라서 <BanG Dream! Ave Mujica>의 애니메이팅은 장르로부터 기인되는 어둠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이에 저항하며 달려 나간 끝에 맞이하는 아름다운 빛을 그려내는, 혹은 그려내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세계관을 구성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각본이라고 생각한다. 연출만으로는 분위기는 만들어낼 수 있을지언정 완전한 세계관을 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BanG Dream! Ave Mujica>의 각본은 구성에 실패했다. 후에 이야기할 것이지만, <BanG Dream! Ave Mujica>의 각본은 대국적으로 한 작품을 바라보기보다는 한 순간의 자극과 쾌락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바람에 시청자에게 작품의 세계관을 인지시키고 설득시키는 데에 실패하였다. 그 순간 애니메이팅은 각본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존재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대국적이지 못한 채 자극과 쾌락에 파묻힌, 이어지지 못하는 이야기들과 인물들에게 남아있는 개성을 애니메이팅은 발견하고 표현하여 겨우 이어낸다. 그렇게 'Ave Mujica'의 무대는 살아남게 되었다.
아, 나를 모욕한 당신의 멜로디는 아직도 광포하게 날뛰는가
하지만 영상 예술이란 곧 종합 예술이라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TV 애니메이션 <BanG Dream! Ave Mujica>는 애니메이팅의 탁월한 발전상만으로는 평가받을 수 없다. 그것이 정녕 애니메이션 예술의 오리지널리티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해도. 결국 나는 TV 애니메이션 <BanG Dream! Ave Mujica>를 혹평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존재를 배척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지만 사랑한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흐린 눈을 할 수는 없었다. <BanG Dream! Ave Mujica>는 어째서 잘못된 작품인가? 나는 그 이유를 예술을 향한 윤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다. 예술의 윤리란 무엇인가?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 나는 예술을 향한 관점과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지하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즉, <BanG Dream! Ave Mujica>에서는 예술가의 의지를 관측할 수 없다. 그것이 <BanG Dream! Ave Mujica>라는 작품이 잘못된 이유이다. 물론 초반에는 거대한 의지가 관측되기는 한다. 심리 호러 장르로서, 미스터리 장르로서 조금씩 분위기를 고조시킨 끝에 최종적으로는 걸즈 밴드 장르로서 음악의 힘을 통하여 모든 갈등을 해소하고 'Ave Mujica'라는 밴드를 결성해 보이겠노라는 포부 말이다. 그러나 전작 <BanG Dream! It's MyGO!!!!!>의 성공으로 자만했는지는 몰라도, 포부 하나만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벌려놓은 이야기는 끝내 욕심으로 변모하여 거대한 해일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끝내 수습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예술가들은 스스로의 의지를 잃어버린 채 순간의 자극과 쾌락에 의지하며 예술을 파괴한다.
<BanG Dream! Ave Mujica>는 전작 <BanG Dream! It's MyGO!!!!!>와는 달리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BanG Dream! It's MyGO!!!!!>는 과장을 통하여 극대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시청자는 복잡한 묘사 없이도 작품에 쉽게 공감하여 빠져들 수 있다. 하지만 <BanG Dream! Ave Mujica>는 그렇지 않다. <BanG Dream! Ave Mujica>의 갈등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그렇기에 시청자가 납득할 수 있는 전개가 필요했고, 캐릭터들의 감정과 관계 역시 이에 알맞은 단계적인 빌드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갈등을 극대화하고 조명하되, 최대한 길게 늘어뜨리며 자극과 쾌락을 유지하는 것으로 시청자를 확보한 다음 어느 순간 해소해 버리는 것이다. 와카바 무츠미를 둘러싼 갈등은 그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화부터 시작된 무츠미의 이중인격 발현은 장장 10화까지 끌리며 작품의 화제성을 견인했다. 하지만 그 해소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무츠미를 둘러싼 'Ave Mujica'의 갈등은 깊은 감정과 관계의 등장 없이 이전에 등장했던 소품들과 백합의 일시적인 등장만으로 싱겁게 막을 내린다. 이는 이후 진행되는 미스미 우이카와 토가와 사키코를 둘러싼 갈등에서도 재현된다. 우이카와 사키코를 둘러싼 거대한 비밀이 밝혀지고 갈등이 시작되지만, 두 사람의 백합 관계를 묘사하는 장면 하나만으로 이전의 모든 갈등은 존재의의를 잃어버리고 사라져 간다.
사실 이는 전작 <BanG Dream! It's MyGO!!!!!>에서 지적했던 것이기도 하다. 인물들의 갈등을 백합 장면만으로 손쉽게 해소하는 편의주의의 존재 말이다. 하지만 <BanG Dream! It's MyGO!!!!!>는 그만큼 밴드 결성 이후 진정한 관계를 쌓아나가는 과정의 백합만큼은 심도 있게 묘사하여 밴드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BanG Dream! Ave Mujica>는 그렇지 못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과정에서 야하타 우미리와 유텐지 냐무의 존재는 잊히고 만다는 것이다. 우미리는 'Ave Mujica'의 해산을 계기로 자신의 '있을 곳(居場所)'의 존재를 갈구하며 'Ave Mujica'를 부활시킨다는 서사가 주어지고, 냐무에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하겠노라는 서사가 애초에 주어져 있었지만, 결국 자극과 쾌락을 부여하기 위한 거대한 서사들에 밀려 사라지고 만다. 결국 <BanG Dream! Ave Mujica>라는 작품에 각본의 유기성, 회차별 유기성, 인물의 유기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작품의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BanG Dream! Ave Mujica>는 걸즈 밴드 애니메이션이다. 따라서 최종적으로는 밴드의 정체성을 드러내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BanG Dream! Ave Mujica>에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BanG Dream! Ave Mujica>는 잘못된 작품이다. 라이브 장면을 떠올려보도록 하자. 물론 <BanG Dream! Ave Mujica>의 라이브 장면은 훌륭하다. 하지만 밴드의 정체성이 완성되지 못한 채 진행되는, 기술적으로만 훌륭한 라이브에서 나는 어떠한 감정도, 관계도 느낄 수 없었다.
13화에 등장하는 'MyGO!!!!!'의 라이브 장면은 그러한 사실을 더욱 처절하게 깨닫도록 만든다. 'MyGO!!!!!'는 <BanG Dream! It's MyGO!!!!!> 10화에 등장하는 '詩超絆' 라이브 장면에서 라이브와 동시에 감정과 관계를 완전히 정립하면서 결성되며, 이후에도 밴드의 정체성을 쌓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번 <BanG Dream! Ave Mujica>의 13화에서 별다른 대사 없이 라이브 장면 하나만으로도 멤버들이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고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전부 드러나며 아름다워진다. 그러나 직후에 등장하는 'Ave Mujica'의 라이브는 말 그대로 라이브일 뿐,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격동이 드러나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라이브를 진행하는 순간의 감정적인 격동이 표정과 움직임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 밴드로서의 감정이나 관계,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순간의 자극과 쾌락만을 극대화하는 선택이 매주 20분 남짓한 재미 뒤에서 사라지는 유기성을 외면하였고, 이어서 인물의 감정과 관계를 실종시켰으며, 끝내 걸즈 밴드 애니메이션으로서 가장 중요한 밴드의 탄생과 그 정체성마저 실종시키고 말았다. 결국 실종된 존재들 위에서 간신히 진행되는 라이브 장면은 기술적으로 훌륭하게 보일 수는 있을지언정 아름다울 수는 없다고, 나는 단언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BanG Dream!' 프로젝트를 사랑할 것이다. <BanG Dream! Ave Mujica>는 잘못된 작품이었지만 오타쿠인 나에게 아름다운 음악과 백합의 선율을 남겼다. 아, 미워하면서 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