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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검 작가 Feb 28. 2023

을해년주_식신

어린 나에겐 감당하기 힘든 복이었을까

식신 : 먹을 식(食), 귀신 신(神). 의식주와 관련된 복.


나는 엄청 부유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부족하지도 않은, 그냥 그런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예쁨을 받으면서 부족함 없이 지냈다. 예쁜 옷을 입어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기도 하면서. 게다가 친˙인척 집안에 놀러 갈 때면 더 많은 예쁨과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곤 했다. 어리고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하지만 나의 의식주는, 별 탈 없이 잘 해결되다가 어느 순간부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천천히 밥을 먹어도 예쁨 받던 나는 가까운 부모님으로부터 가장 먼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때의 이야기를 하려면 중학생 정도 때로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중학생이 됐을 무렵, 어김없이 가족끼리 큰집으로 제사를 지내러 갔다. 솔직히 나는 제사를 지내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저 제사가 빨리 끝나고 맛있는 제사 음식, 특히 그중에서도 고구마튀김과 두부 튀김을 먹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제사가 끝나자마자 큰어머니 분들은 큰아버지 분들이 먼저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상을 차렸다. 상 위에 맛있는 음식들이 놓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자 나도 내심 들떴다. 얼른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왜 하필 남자가 우선 밥을 먹을까, 남녀의 구분이 사라진 지 오래인데 왜 여전히 남자의 밥상부터 차리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물론 아이들도 많이 배가 고픈 줄 아셨던 큰어머니 분들은 나와 동생에게도 얼른 밥을 먹으라고 하셨다. 이 한 말씀, 한 마디에 이런 생각은 곧 잊어버리고 맛있는 밥을 먹기에 바빴다.


문제의 날에는, 설날이었는지 아니면 추석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나 혼자만 앉아서 꿋꿋하게 밥을 더 먹고 있을 때 아버지의 한 마디가 귓가에 울릴 뿐이다.


“네 때문에 상을 못 치우고 있잖아. 빨리 먹고 일어나라.”


순간 울컥했다. 어렸을 때부터 행동이 조금 느렸던 나지만 먹는 양이 생각보다 많아서 하루에 세 끼는 기본이고 거의 매 끼니 먹을 때마다 밥을 두 그릇씩 먹고는 했었기에, 그때에도 두 그릇째 밥을 먹으려고 하던 찰나였다. 그런데 바로 뒤 소파 위에 앉아있던 아버지가 내게 그렇게 쏘아붙인 것이다. 겨우 오물오물거리면서 입 안에서 굴러다니는 밥알과 튀김들을 씹어대는데 목구멍이 턱 막히고 양 볼이 저릿저릿했다. 바로 눈물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울 수 없었다. 울고 싶은  티를 내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고, 애 먹는데 너무 그러지 마세요. 얘야,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 알겠지?”

여전히 입안에는 음식물이 가득 들어있었고 동시에 겨우 눈물마저 참고 있었던 터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마음속에서만 이미 꺽꺽거리면서 울고 있을 뿐.


그날 그 이후부터였나. 그전에, 좀 더 어렸을 때는 남들에 비해서 조금 늦게 밥을 먹는 것에 대해서 크게 눈치를 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신이 무엇을 먹든 천천히 먹고 남들에 비해서 늦게 먹는 것에 대해 조금씩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게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한창 학교를 다닐 때는 친구들과 같이 점심을 먹을 때도 내가 너무 먹는 속도가 늦는 것 같아서 밥과 반찬을 적게 퍼서 먹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의 먹는 속도가 빨랐고 나 혼자 그런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허겁지겁 먹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사실, 혼자 남아서 밥 먹는 게 싫었지만 괜찮은 척하며 친구들을 먼저 보낼 수밖에 없었다. 겉과 속을 다르게 포장해서 말이다.


난 진짜 괜찮으니까 너희 먼저 교실로 돌아가도 돼. 마저 먹고 나도 곧 따라갈게.




인지하고 이해하는데 느린 사람, 행동이 느린 사람, 뭘 해도 답답하고 느린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기본적으로 그런 사람을 바라보는 이도 참으로 답답하겠지만 그 누구보다도 가장 답답해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왜 나만 이렇게 느릴까 하며 자책도 많이 했다. 그래서 어린 소녀였던 나는 그저 상처‘만’ 많은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그런 상처를 보듬을 줄 알고 이제는 괜찮다며,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며 말해주면서 덤덤하게 에피소드를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아무리 느린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삶을 살아갈 수 있고, 또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는 속도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 또한 과거의 나에게 전하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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