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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뮨 May 20. 2021

농부의 딸로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부모님이 농사일을 쉬신 적이 없다. 예전에는 정말로 먹고살기 위해 벼농사를 비롯해서 생계형 농사를 지으셔서 팔기 바빴다. 은퇴하고 나서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볼까?’라고 쉽게 말하는 것에 대해 나는 정말 반대한다. 농사란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엄청난 지혜가 필요하고, 일머리를 요하는 직업 중의 하나이다. 천대하기 쉽지만 막상 해보면 손끝이 야무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밭의 모양이 다르고, 똑같은 날 심었어도 자라는 속도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초등학교 때는 한참 농사와 축산으로 부모님이 정신없이 바쁜 시기였다. 7살 위의 언니와 5살 위의 오빠는 말할 것도 없고 막내인 나를 포함해서 모든 식구와 친척들이 거들어야 어두워지기 전에 간신히 저녁을 먹을 수 있었고, 몸을 아끼지 않고 일을 해대던 아빠는 늘 저녁이면 다리를 주무르거나 허리를 밟으라고 하셨다. 


지금은 생계와는 멀기도 하고, 기존에 있던 땅도 정리했지만 또 작은 새로운 땅이 생겨서 놀리기 뭐하기도 하고, 직접 심어서 가족들과 조금만 먹기를 원해서 하신다고 하지만 그 조금은 조금이 아니었다. 나야 어쩌다 한번 가서 거드는 것이지만 직접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허리의 통증쯤은 감안하고 하는 일이기도 하다. 


마트에서 편하게 돈을 주고 야채를 사 먹는 사람들은 ‘너무 비싼데’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야채와 채소와 과일이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는 정말 엄청난 사람들의 희생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비싸다는 말을 넣어두어야 할 것 같다. (물론 나도 과일을 살 때마다 비싸다고 여겨 싼 과일만 사는 1인이지만ㅠㅠ) 그만큼 자라기까지, 흠 없이 상품성을 갖추기까지 몇 번의 손길이 가고, 물을 주고 풀을 뽑으며 거름을 주고 관심과 걱정이 갔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냥 무심하게 아무렇게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친청 아빠는 농사에 진심인 스타일이시다. 밭의 모양이 자기 자신이라도 되는 듯이 정갈하게 풀을 뽑고, 줄을 맞춰 심는다. 누가 보면 일부러 각을 잡아서 심었나 싶을 정도로 깔끔하기 그지없다. 본인이 좋아하시는 일을 막을 생각은 없지만 문제는 건강이다. 이제는 허리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일상생활에서도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일만 보면 가만있지를 못하고, 남에게 맘 놓고 맡기지 못하는 성향이다 보니 본인의 몸은 골아가기 시작한다.


너무나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어서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난다지만 이렇게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시면 되도록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어떻게든 알뜰하게 먹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피와 땀과 눈물이 섞여 있는 것이므로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풍족하지 않게 농부의 딸로 자라서 불편한 점도 당연히 있지만 이것은 나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가난하게 자랐기에 돈이 귀한 줄 알게 되었고, 빈곤에 처할 줄도 아는 내가 되었다. 애기 손바닥보다 작은 상추들이지만 씨앗에서 이만큼 자라기까지 몇 번의 허리를 굽히셨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기에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꼭꼭 씹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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