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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Aug 23. 2024

공사 중 돌아가시오

카스트로헤리스 - 프로미스타 25.3km

비빔밥에 된장국을 저녁으로 먹은 데다가, 대부분 한국인이었던 어제저녁은 마치 국내 여행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곳저곳에서 한국말이 들리고 한글이 보이고 메뉴판에 한국 음식이 있어서 그랬나 보다. 그래서인지 모처럼 깊은 잠을 잤다. 조용한 새벽을 깨운 건 다름 아닌 일본인 노부부였다. 정말 조용히 움직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래 칸 어르신은 이미 출발 준비를 끝내고 문을 나서고 계셨다.



카스트로헤리스는 순례길에서 만나는 마을 중에 가로길이가 가장 긴 마을이다. 이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2km가 넘었다. 묶었던 오리온 알베르게는 마을 초입에 있었기에 카스트로헤리스를 빠져나오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마지막 회전교차로를 지나 들판이 있는 길로 접어들었다. 저 멀리 산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이 보였다. 얼핏 봐도 경사가 심해 보였다. 저곳을 올라가진 않겠지. 작은 희망을 안고 걷고 있는데, 희망은 점점 절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쯤 정상에 도착했다. 올라오긴 힘들었지만, 위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전망은 고생한 보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 맛에 등산을 하는 것 같다. 올라왔으면 내려가야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고도만 바뀐 평원이 이어졌다. 그늘 하나 없는 끝없는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간에 들릴만한 마을도 거의 없었던 이번 구간은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았다. 피레네 이후로 비 한 방울 오지 않았던 탓에 밀밭에는 스프링클러가 쫙쫙 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물을 뿜어대고 있었다.



스프링클러에 뛰어들고 싶다고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앞에 보이는 몇 개의 스프링클러가 길까지 넘어와 물을 뿌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물줄기로 뛰어들었다. 옷이 젖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타들어 가는 태양의 열기에 몸에 닿은 물은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증발해 버렸다. 길에서 만난 순례자들도 오늘만큼은 웃음기가 없었다. 입술은 말라가고 숨을 내쉴 때마다 뜨거운 공기가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순례길 위로 새로 생기는 도로의 교각을 세우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힘든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훨씬 돌아가야 했다. 한계에 다다를 때쯤 도착한 알베르게는 호스트의 평이 좋아 예약했는데, 호스트는 정말 좋았지만, 시설은 그렇지 않았다. 멀미가 날 정도로 침대가 흔들렸다. 아래층 사람이 기침하면 지진이 난 것처럼 휘청거렸다. 더군다나 소문으로만 듣던 중국인 단체여행객을 만났다. 이들의 무례와 시끄러움은 익히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사 먹을 만한 레스토랑도 없었고 너무 뜨거운 날씨에 입맛이 없었다. 알베르게 건너편에 있던 슈퍼마켓이 마침 문을 열었다. 난 그곳에서 닭 육수 맛이 나는 컵라면과 즉석밥 하나, 그리고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을 수 있는 간편 요리 제품을 샀다. 지친 몸을 위해 에너지음료와 탄산음료까지. 알베르게에 있는 대다수의 순례자도 오늘은 많이 지쳐 보였다. 보통은 씻고 마을 구경하러 나가는데 아무도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흔들리는 침대와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PS. 중국인의 무례와 시끄러움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내가 만난 중국인 순례자 중 한두 명의 소수 인원으로 온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 열 명 남짓의 단체 순례자들이었다. 그들의 막무가내식 행동은 내가 느끼기 이전에 이미 많은 부분을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어딘가에선 만날 테니 그 알베르게는 피하라는 친절한 충고와 더불어 말이다. 막상 만나니 왜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알게 됐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내가 만났던, 그들만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순례길을 걸으며 느낀 것은 다른 외국인들 역시 대체로 중국인은 피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인 역시 단체가 되면 문제를 일으키고 막무가내가 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특히 나잇값 좀 해야 하는 소위 ‘꼰대’들이 모이면 그렇다는 것이다. 나 역시 입 꾹 다물고 있으면 꼰대 소리를 들을 나이에 접어들었기에 더 안타깝다. 나이와 머릿수가 권리가 되고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요즘 이십 대나 삼십 대와 이야기를 나눠보면 오히려 배울 점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세상이 변해간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지만 오늘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다. 항상 겸손하게 배우는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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