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한국에 첫 마라탕 유행이 시작되던 2017년. 친구가 "요즘에 마라탕이란 게 그렇게 맛있대!" 하며 퇴근 후 회사 근처 여의도 마라탕집에 데려갔다. 건물 2층에 있는 평범하게 생긴 식당에 들어가 벽에 붙은 마라탕 주문하는 법을 따라서 플라스틱 볼에 재료를 담고 넣을 고기와 매운맛 단계를 골랐다.
얼마나 담아야 할지 감이 안 와서 눈대중으로 대충 알배추와 청경채, 버섯, 옥수수면, 중국당면 등을 때려 넣었더니 2만 원이 훌쩍 넘어버렸다. 대야 같은 커다란 그릇에 가득 담겨 나온 마라탕을 보고 깜짝 놀라 “야 이거 맞아?” 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테이블은 다 둘이서 하나씩 나눠먹는데 우리는 각자 커다란 그릇을 하나씩 받아 들고는 그 모습이 웃겨서 깔깔 웃었다.
"이거 완전 티비 화면이 지지직거리는 맛이야!"
처음 마라탕 국물 맛을 봤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그러다 점점 그 자극적이고 얼얼한 매운맛과 고소한 땅콩소스의 조화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사골베이스의 얼큰하고도 짭짤한 국물이 집에 갔는데도 계속 생각나고, 어느새 나는 마라탕 신봉자가 되어 일주일에 네 번 이상은 마라탕을 먹는 마라탕에 미친자, 마친자가 되어 있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매운 게 땡겨서, 야근해서, 열받아서, 그냥 배고파서. 마라탕을 먹을 이유는 차고 넘쳤다. 가족들은 물론 다른 친구들, 직장동료까지 마라탕에 입문시키고 나니 주변 사람들은 이제 나랑 만날 때는 무조건 마라탕을 먹는다고 생각하고 나올 정도였다.
지독하기로 악명 높은 상사 밑에서 일할 때였다. 출근하면 숨 한 번 제대로 못 쉬고 퇴근만 바라보며 버텼다. 결국 회사에서 펑펑 울고 말았던 날. 퇴근하고 여의도역에서 만난 친구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토닥여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는 내 손을 붙잡고 마라탕집에 데려갔다. 추가금액을 내야 하는 새우꼬치랑,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에 스팸도 가득 넣은 2단계 마라탕을 사주면서 친구는 나보다 더 열을 내며 상사 욕을 했다.
“걔는 말을 머 그따구로 한다니???
내가 가서 뒤통수 확 때려주고 올까!!??”
욕하다 마라탕 한 입 먹고, 울다가 또 한 입 먹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방망이질 치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 이후로도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친구가 사주는 마라탕을 먹으며 그렇게 그 시간들을 견뎠다. 그때는 정말 죽을 만큼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떠올려보니 왜 울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친구랑 맛있게 마라탕 먹은 기억뿐이다. 나를 마라탕에 입문시키고 마라탕으로 위로해 주던 고마운 친구.
생각난 김에 그 친구에게 오랜만에 마라탕 먹으러 가자고 해야겠다. 이번에는 내가 살 테니 꿔바로우에 마라샹궈까지 실컷 시키라고. 네가 사준 마라탕 덕분에 힘들었던 한 시절을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다고. 친구는 분명 새삼스럽게 왜 그러냐며 오글거려할 테지만 그래도 꼭 말해줘야지.정말 정말 고마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