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경 Jul 08. 2024

삶은 글이 되고, 글은 삶이 된다

​소설이 쓰고 싶었다. 소설 속 세상은 너무나 근사하고, 때론 말도 안 되게 엉망이었지만 그래서 진짜 같았다. 이 세상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것만 같은 나와 비슷한 인물들이, 나처럼 비루한 하루하루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고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소설 쓰기에 여러 차례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나에겐 상상력이란 게 없었다. 실제가 아닌 일을 꾸며내지를 못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춘문예에 냈던 소설도 아빠의 파란만장 구사일생 스토리에 살만 붙인 거였다. 그 이후로도 소설 수업을 들으며 습작도 해봤지만 결국 내가 느낀 건, 난 소설 쓸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소설을 포기하고 나니 한동안은 개운했다. 안 나오는

글을 억지로 쥐어짤 필요도 없고, 감동도 재미도 의미도 없는 쓰레기 같은 글을 나에게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니까.


한동안 글 생각은 안 하고 살았지만, 책을 계속 읽어서인지. 아님 내 안에 써야만 하는 글이 계속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것인지. 결국 나는 에세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에세이는 정말 쓰기 싫었다. 가벼운 글이라고 무시해서가 아니라, 제일 용기가 필요한 글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소설은 내 이야기를 쓰고도 “이건 소설이야!”라며 그 이름 뒤에 숨을 수 있지만, 에세이는 달랐다. 진짜 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의미 있게 울림 있게 써야 했다. 그 이야기들이 아무리 부끄럽고 수치스러울지라도.


사실 지금도 완전하게 용기가 나서 쓰는 글은 아니다. 어느 날엔 아무거나 막 쓰자! 다 쓰자! 계속 쓰다 보면 내 글이 필요한 어느 한 사람에겐 가닿겠지! 생각하다가도, 어느 날엔 모든 글을 한 번에 다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글도 못 쓰면서. 계속 이런 글을 쓰는 게 다 무슨 소용이지?


그럼에도 내 마음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아주 솔직하고 원초적인 글쓰기 욕망을 말해본다. 글 겁나 잘 쓰고 싶다. 재미있고, 의미 있고, 계속 읽고 싶은 글을 쓰는 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싶다.


지금보다 더 자랑스러운 딸이, 누나가, 아내가, 친구가 되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내가 된다. 항상 선망해 오던 작가님들이 나의 동료가 되고, 나는 그들과 함께 글쓰기의 고충을 나누고 연대하며 매일 글을 쓴다.


삶을 글로 쓰다가, 글이 삶이 된다.

이전 05화 금수저보다 떡볶이수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