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아토피 치료의 구세주, 듀피젠트 주사를 맞는 날이다. 2주에 한 번씩 배꼽 왼쪽 5센티미터 부근에 길고 뾰족한 주삿바늘을 끝까지 찔러 넣는다. 주사액이 너무 차가워도, 너무 빨리 넣어도, 각도를 잘못 잡아도 겁나게 아프다. 벌써 자가투여 2년 짬이 찬 나는 아무렇지 않게 주삿바늘을 배에 푹 찔러 넣고 몇 초 만에 투여를 끝낸다.
주사를 맞고 나서부터 나는 다시 태어난 거나 다름없었다. 과거의 내가 그렇게도 간절히 원했던, 어쩌면 영영 닿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판타지 같은 삶 그 자체. 진물과 피딱지가 사라진 피부를 만지며 샤워할 수 있어서, 얼굴을 숙이고 다니지 않아도 돼서, 여름에 반팔 반바지를 입고 다닐 수 있어서,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런 나를 보고 누군가는 말했다. 너무 쉽게 만족한다고. 쉽게 행복해져서 좋겠다고. 비아냥이 섞인 그 말들을 처음엔 콧방귀 뀌며 무시했지만, 점점 나를 좀먹기 시작했다. 나 너무 꿈이 작은가? 지금 이 삶에 만족하면 안 되는 건가? 아토피는 이제 내 삶에서 거의 사라졌으니,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을 바쳐야 하나?
더 나은 것을 찾아가는 것과 현재에 만족하는 것.
나는 그 사이에서 매일 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행복과 불행을 오고 갔다.
넷플릭스에서 <트윈스터즈>라는 다큐 영화를 봤다. 25년간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던 쌍둥이가 유튜브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된 기적 같은 이야기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각각 미국과 프랑스로 입양된 사만다와 아나이스는 실제로 만나 똑같이 생긴 서로의 모습에 감격한다. 이어 그들은 기대감을 갖고 생모를 찾아보지만 끝내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다. 슬픔에 잠겨있는 것도 잠시, 아나이스가 말해준 프랑스 속담.
”최고가 좋은 것을 망친다.“
더 나은 것을 원하다가 좋은 것을 놓친다는 뜻이다. 아나이스는 사만다를 만나 행복하니 더 좋은 것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고,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지금 행복하면 그걸로 됐다고.
아나이스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나는 더 많은 돈이, 더 좋은 집이, 더 좋은 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아프지 않은 몸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오늘 같은 하루를 매일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건 나에게 기적이었다. 나는 내가 가진 이 삶이 눈물 나도록 감사하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