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by 나하나

잠시 잠깐 훈훈한 시간도 있었지만 대체로 불안과 공포의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폭력적이었고 어머니는 날카로웠다. 폭력과 날카로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를 할퀴면서 거대한 괴물이 되었고, 그 괴물은 우리 가족을 무참히 짓밟았다. 내 안에도 그 괴물이 자라서, 언젠가 내가 그들보다 힘이 세지면 저들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그 시간을 견뎠다. 그런 유년 시절을 보낸 나는 괴물을 품고 세상에 던져졌다.

나는 날카로웠고, 권위적이었고, 그래서 폭력을 일삼았다. 예의를 말하면서 권위를 내세웠고, 나이를 내세워 폭력을 가했다. 올바른 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날카로운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성학을 처음 접하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전까지 나는 내 안에 괴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내 삶의 정당성을 남성성으로 채웠다.

페미니즘을 접하고 가장 충격이었던 건 모성이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남성이 자기 권위와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서 수천 년 동안 모성을 빙자해 여성을 집안에 가뒀던 역사를 인식한 순간, 거대한 돌덩이를 맞은 것 같았다.

내 주변을 살펴봤다. 어머니와 동생에게 내가 기대하고 강요했던 건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역사 위를 걷는 행위였다. 그렇게 다져진 역사 위에서 나는 가장으로, 선배로, 비장애인으로, 이성애자로, 경상도 사람으로, 당연히 주어진 무엇으로 폭력을 일삼으면서 살아온 남성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런 환경 속에서 그런 취급을 당하면서 살아가고 있고 나 역시 그걸 인식하지 못한 채 억압과 착취와 폭력을 가했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변하려면 나를 점검하고,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부하고, 누가 어디서 어떻게 소외당하고 차별받는지 알아야 했다.

안다는 건 변한 게 아니다. 앎은 그냥 머릿속 지식일 뿐이다. 지식은 일상에 적용되지 않으면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정보는 변화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 변화는 나와 우리를 점검하기 위해 공부하고, 공부를 통해 깨닫고, 깨달은 걸 실천하면서 나아간다.

우리 사회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기득권이 쌓이면 변화보다 현상을 유지하려는 구조로 짜여있다. 나이가 들면 권위가 따라온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 내 머리가 고착되고 내 몸이 스스로가 부여한 권위로 차버리면, 또 누군가를 억압하고 착취하고 폭력을 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변화를 위해 애써야 함께 올바로 살아갈 수 있다.

여기까지 오는데 10년이 걸렸다. 이젠 더 이상 과거의 폭력적인 괴물에게 현재를 저당 잡혀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수 없이 실수하고, 어렵게 반성하고, 또 조금씩 변하려고 발버둥 친다. 다행히 그 시간이 쌓여 전보다 덜 권위적이고 덜 폭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폭력적이고 권위적이어서 내 안에 괴물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실수를 반복한다. 과거로 쌓인 괴물은 스스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점검하고 공부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 과정을 만약 누군가가 내 삶을 판단해 고치려고 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현재가 됐을 거다. 아마도 꼴마초가 되어 여성과 소수자를 혐오하면서 살았겠지. 그래서 나는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사람은 절대 고쳐 쓸 수 없다. 고치는 과정에 강요가 존재하고, 강요는 곧 폭력이기에 진정한 변화를 끌어낼 수 없다. 변화의 과정 속에 들어서려면 결국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고 변해야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변화를 다짐했을 때 곁에 있는 이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지지하고 응원 해야 한다. 나도 페미니스트로 나아가려고 할 때 친구와 동료들이 내 선택을 지지했다. 실수할 때는 따끔하게 지적해줬고, 한 번의 실수로 나를 밀어내지 않았고, 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다려줬다. 분명 그들도 힘들었을 텐데, 그래 줬기에 겨우 사람 구실 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 머물러 현재를 괴롭히며 후회의 나날들이 쌓이는 나님에게 화를 냈다. 나님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며 변화를 다짐했다. 이 다짐이 혹시라도 나님을 고치려는 나의 강요 때문인지, 그럼 나의 화가 나님에게 폭력으로 다가간 건데..., 조금 두렵지만, 그 두려움은 잠시 접어두고 나님의 다짐을 열렬히 지지하고 응원한다. 사랑하는 나님이 과거를 딛고 일어나 현재를 더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도울 거다. 그렇게 오롯이 서려고 아등바등 애쓰는 우리 두 사람이 하나의 무대 위에서 행복을 향해 나아갈 테다!!

작가의 이전글나에 대한 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