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다 그렇게 살아요!

욕망이 부딪히는 무대 위에 서서

by 나하나

남들은 다 그렇게 살아요!

사랑하는 나님에게 오늘 아침에 들었던 말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선택한 후, 사랑하는 가족과 멀리하고 싶은 친척에게 늘 듣던 말.

“너는 왜 항상 남들이랑 다르게 살려고 하니.”
굳이 그러려고 애쓰는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내가 하는 일과 내가 살아가는 삶은 남과 다른 ‘무엇’이 되었다. 싫지 않았다. 세상 모든 사람이 각자의 모양새로 다르게 살아가고 있지만, 사회가 만들어 놓은 주요한 때와 선택지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이기에, 내가 판단 한 때와 내게 중요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때론 모든 선택의 책임이 오롯이 나의 몫이라는 게 버거울 때도 있지만, 잘 닦인 길 위에서 약속 시간 맞추듯 빠듯하게 사는 삶보다는 즐겁다.

굳이 비교하자면 더 즐겁다는 거지, 삶은 어렵고 버거운 것이다. 고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오, 명성을 높게 쌓는 것도 아니며, 강한 권력을 쥐는 것도 아니기에, 내가 떨쳐낼 수 없는 관계(가족과 친적) 외에는 내 삶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로 채워가는 게 유일하다. 결과적으로 서로의 삶을 지지하는 동료는 많지만, 속 깊은 이야기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몇 없다. 그런데 40년 가까이 살아보니 주위에 많은 사람이 있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 몇 명이 서로의 삶을 지탱해주는 게 더 풍요롭더라. 그래서 내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들이다.

서른 중반이 되고 사람 사귀는 게 더 어려워졌다. 10년 넘게 일을 하다 보니 하나씩 보이는 것들, 함께 일하는 동료 몇몇은 자신의 목적을 감추고 능글능글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사람을 믿고, 사람 덕에 이 일을 하고 있는데 그런 태도는 내가 하는 일의 가치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일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솔직히 더 많은 동료를 만들 필요를 못 느끼는데, 지금 공동체를 함께 꾸려가는 이들 만으로도 내겐 감사한 환경이다.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30대 중반의 나이는 가치를 따지기 전에 물질적 조건을 갖춰야 하는 때였다. 연봉의 크기와 차종과 집 평수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조건이란 걸 체감하는 나이다. 내 삶에는 우선순위가 아닌 것이 조건이 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성을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사랑을 갈구하지만, 나 역시 조건을 들이미는 사람을 또 굳이 밀어내고 있었다.

나님이 나타났다. 에너지 뿜뿜 풍기는 그녀가 내 사람이 될 거란 걸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 사람에게 내가 생각하는 삶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거침이 없다. 그게 나님에게 지금껏 하나의 목소리가 되어, 유일한 사람이 아닌 사랑의 조각 중 한 존재로 느껴지게끔 하는 요소가 될 줄 상상도 못 하고 사랑과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연과 필연과 기다림과 애씀이 서로를 사랑의 무대 위에 오르게 했다. 오늘 아침 침대에서 나님이 말했다. 신기한 일이에요. 나 역시 나님과 사랑을 나눈 지 9개월이 됐는데도 불쑥,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님과 나는 많이 다르다. 나님은 주어진 때와 선택을 거부하고 싶었지만 ‘어떤’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적절한 때 적절한 선택을 해왔다. 어쩌면 나를 만난 게 인생의 가장 큰 도전이고 거대한 과제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확인하고, 앞으로 함께 하고자 하는 방향을 잡아가기로 했다. 목표를 세웠다고 해서 이해되는 게 아니고, 이해가 됐다고 해서 내가 바뀌는 게 아니고, 내가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 관계가 능숙해지는 건 아니다. 그런 현실을 인정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와중에 불쑥 내 안의 관성을 강조할 때가 있다.

귓속말로 “남들은 다 그렇게 살아요.”라는 말을 나님이 했을 때, 충격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이모 삼촌 고모 숙모 당숙이 생각났다. 그 말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들. 우리의 삶을 살기로 약속해놓고 다 그렇게 산다는 이유를 디미는 나님. 그리고 그 무던함. 나는 내 속에 빠져 뾰로통한 표정으로 서운함을 드러냈다.
“내 존재 자체를 이해하고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 나의 못난 모습까지도 인정해줬으면 해요.”라는 말을 듣고, 어떤 조건과 물질을 자신의 존재 자체라고 생각하는 건가? 고민에 빠졌다.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는 건가? 상념에 빠졌다.
“우리는 나를 더 이해해주고, 더 배려받길 바라는 상태인 것 같아요. 상대방의 불편함 서운함을 돌아보기 전에 말이죠. 어쩔 수 없이 맞이 하는 시기인 것 같은데 힘이 빠지고, 힘들어요.”
라고 말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님의 욕망을 내 가치로 막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태도가 옳은가? 머릿속으로는 ‘아니!’라는 대답이 빠르게 내려지는데, 여전히 마음속에선 그 욕망의 가치를 따지고 있다. 사랑의 무대 위에 서 있는 우리가 당장 내일 바뀔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욕망의 방향, 가치의 방향성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합의가 없으면 결국 각자의 욕망 속에, 자신의 가치 속에 상대를 가둘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남들은 다 그렇게 살아요가 온몸에 둥둥 떠다니면서 질문의 방향을 흩트리는, 차가운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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