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해

사랑하고 놀고 연대하고 일하는 삶을 꿈꾸며...1

by 나하나

내 삶의 선택에서 내 힘이 개입할 수 없는 시절이 흘러 간 후, 나는 꿈으로 가득한 20대를 보냈다. 꿈이라는 단어로 오용되었지만 실질적으로 ’무엇이 될’ 것인지에 대해 막무가내로 으르렁댔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며 꿈에 취했고, 길게 뻗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조명 아래서 ‘액션’을 외쳤다. 함께 무엇이 되자는 결의를 ‘컷’ 하지 않기 위해 결의를 깨는 이에게 비난을 퍼부으며 패배자로 만들었다. 우연히 되고자 했던 무엇이 되었고 그 무엇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내 삶의 지축이 조금씩 흔들렸다.


20대의 끝자락부터 시작한 일이 벌써 13년 차다. 강산이 한번 변하는 동안 나는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곁에 머물며 ‘연대’라는 이름으로 기록하고 함께 투쟁했다. 13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톺아볼 겨를 없이 나름 치열하게 활동했다. 그렇게 길 위에서 정의로운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가난을 긍정하게 되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꿈꾸고 있다. 꿈이 바뀐 게 아니라 드디어 꿈을 찾은 것이다. 그렇게 강산이 한번 변하는 사이 나도 변했다.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너무 포괄적이어서 길을 잃을 때가 많다. 길을 잃은 게 아니라 내 몸이 내 머리를 버거워하고, 내 머리가 내 몸을 인정하지 못하는 순간들 속에서 헤매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럴 땐 단순한 게 답이다. 그동안 경험하고 느꼈던 것을 바탕으로 지금 내게 행복은 ‘사랑하고 놀고 연대하고 일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 놀이, 연대, 일은 서로 연결되어있지만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니까 오늘은 사랑에 관해...그중에 제일이 사랑인 이유는 사랑이 바탕되지 않는 놀이와 일, 연대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의 시작과 결정체는 사랑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사랑에 관해...



수많은 우연들이 겹쳐 나님과 만났고, 신기하고 신비로운 시간들이 사랑으로 쌓이고 있다. 내 삶에서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 내 중심이 되어버렸다. 너무 달라서 가끔 두렵지만, 너무 닮아서 익숙한 편안보다 낫다. 알랭 바디우의 말처럼 ‘하나의 관점이 아닌 둘의 관점에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삶’이 사랑이라면, 나 역시 그렇게 믿는다, 너무 다른 나님과 펼쳐 나갈 하나의 세계는 그 폭이 얼마나 넓을 것인가... 두려운 설렘이다.


‘대전 오면 밥 사드릴게요.’

요식적으로 건넨 말에 의미를 둔 나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밥 먹으러 갈 구실을 만들었다. 흔쾌히 저녁 식사를 수락한 나님은 만나자마자 손 수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를 건넸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직접 만든 카드에 고마운 이들에게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만드는 김에 만들었다고 툭 전한 카드에는 남자로 다가가기엔 절망적인 내용이 적혀있었지만, 무엇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내 마음을 채웠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현실의 갑갑함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나님은 그 답답함을 떨치기 위해 공유주방을 꿈꾼다고 했고, 나는 나님의 과거를 위로하고 미래를 응원하고 싶었다.


자기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사람, 삶의 관성을 제어하고 공유하는 미래를 꿈꾸는 사람. 나님은 불안과 두려움을 강조했지만 내 눈에는 새로운 삶의 출발선에 앞에 서있는 멋진 사람이었다. 나님은 몇 개월 후 몇 년 동안 머리로만 상상했던 공유주방을 힘겹게 오픈했다. 거침없는 추진력까지 겸비한 나님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님은 나이 많고,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비주류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 고집까지 센 나와 사랑이라는 힘겨운 모험을 해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앞에 조건은 찌질한 내가 붙인 건데, 사랑 앞에서 나는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그래서 늘 초라해진다. 초라해진 내가 나님의 말을 듣고 ‘삶 자체가 고난인데 사랑까지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고 나님의 당찬 고백을 뭉갰었다. 확실히 나는 멍청이다. 두 번 다시 누군가의 고백을 나의 아둔함 때문에 의미 없는 말로 뭉개지 말자고 약속하고, 그 모험을 함께 하자고 약속했다.


둘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삶이 사랑이라고 말했던 바디우의 말을 다시 빌려 말하자면 우연으로 발생한 사랑은 ‘분리이자 구분이며 차이인 첫 번째 요소를 갖게 되며’, ‘사랑이 바로 구분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둘인 무엇이 모습을 드러내고 무대에 등장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인즉슨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의 무대 위에서 엄청 빡씨게 투쟁하면서 그 무대를 넓혀간다는 의미다. 나님과 나는 그 치열한 투쟁을 한 사람에게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오롯이 자신으로 설 수 있도록 지지대가 되어주면서, 함께 경험하기로 했다. 우리는 ‘최초의 장애, 갈등, 권태와 마주하여 사랑을 포기해버리는 것은 사랑에 엄청난 왜곡’이란 걸 인정했고, ‘공간 세계 시간이 사랑에 짐 지우는 장애들을 지속적이고 거침없이 극복’하면서 삶과 사랑을 재발명해 보자고 약속했다.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선 일상을 충분히 살아내야 한다. 일상에서 사랑하고, 그 속에서 놀고 일하며, 그걸 바탕으로 연대해야 한다. 일상에서 삶을 재발명하고, 반복적인 고백을 통해 사랑을 확장해야 한다. 그런 미래를 꿈꾸며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서 다시 사랑을 고백한다. 사랑합니다, 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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