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란도트 Turandot, Nessun Dorma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할까?
그 사랑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까?
단 한 번의 시선으로 사랑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지는 건 가능할까?
사랑을 철저히 믿지 않던 사람이 단 한 번의 키스로 변할 수 있을까?
푸치니Puccini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는 위의 질문들에 모두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중국의 공주 투란도트Turandot는 남자를, 특히 이방인 남자를 증오한다. 과거에 타타르 군이 북경에 들어와 그녀의 할머니 로우링Lo-u-ling 공주를 겁탈하고 잔인하게 죽인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방인 남자를 하나씩 죽임으로 할머니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그녀는 결혼을 전제로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낸다. 성공하면 투란도트와 결혼하게 되지만 실패하면 죽음뿐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한 번 그녀를 보기만 하면 목숨을 걸고 그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외국 남자가 적지 않다.
몰락한 타타르의 왕자 칼라프Calaf는 페르시아 왕자의 사형 집행장에 나타난 투란도트를 보고 마음을 빼앗긴다. 주변의 만류 따위는 듣지 않고 갈등도 고뇌도 없이 도전의 징을 울린다.
예상보다 간단하게 칼라프는 세 가지 수수께끼를 모두 풀지만 공주는 이름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할 수 없다며 황제에게 간청한다. 하지만 황제는 '약속은 신성하다sacro il gi ramento'라며 그녀의 간청을 거절한다.
칼라프는 다음 날 해가 떠오를 때까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낸다면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겠다며 호기를 부린다.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투란도트는 모든 시민들에게 명령한다. 그의 이름을 알아낼 때까지 아무도 잠들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칼라프는 다가오는 비극을 감지하지 못하고 여전히 사랑에 취해 노래한다.
Nessun dorma! Nessun dorma!
Tu pure, o, Principessa, nella tua fredda stanza,
guardi le stelle che fremono d'amore e di speranza
아무도 잠들지 말라! 아무도 잠들지 말라!
당신도 잠들지 못해, 오, 공주여, 당신의 차가운 방에서, 사랑과 희망으로 떨고 있는 별을 바라보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은 아무도 모르니, 결국 공주가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Dilegua, o notte! Tramontate stelle! Tramontate stelle!
all'alba vincero! vincero! vincero!
사라져라, 밤이여! 떨어져라 별들이여!
해가 뜨면 난 승리할 것이다! 승리! 승리!
투란도트의 신하들이 칼라프의 눈먼 아버지 티무르Timur와 그를 돕고 있는 시종 류Liu를 붙잡아 공주 앞으로 끌고 온다. 노예 신분인 류는 오래전 한 번 본 칼라프를 사랑하고 있다.
가혹한 고문과 죽음 앞에서도 류는 칼라프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결국 류는 한 번 보고 사랑에 빠진 남자를 지키기 위해 자살을 선택한다.
류의 죽음이 칼라프와 투란도트의 마음에 어떤 변화를 준 것일까?
류의 죽음을 애도하던 칼라프가 투란도트의 베일을 찢어 버리고 갑자기 그녀에게 키스한다.
단 한 번의 키스에 투란도트의 얼음보다 차갑던 마음은 녹아내린다.
게임을 포기한 걸까?
칼라프는 이제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투란도트는 '이제 나는 당신의 이름을 안다'고 말한다.
동이 트자 황제 앞에선 투란도트는 칼라프의 이름을 안다고 말한다.
투란도트의 입에서 칼라프의 이름이 불려진다.
'그의 이름은 사랑'
푸치니는 오페라 투란도트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푸치니를 만나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작가는 사랑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겐 아름답고 화려한 선율이 온몸에 스며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시공을 초월해서 벌어진 것 같다.
최근에 유행처럼 세계 각지에서 만들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투란도트의 선율은 단골 레퍼토리로 등장한다. 폴 포츠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폴 포츠는 왕자라는 신분과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모습 등 자신의 인생과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역할의 노래를 불러 세계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어릴 때부터 꿈꾸던 직업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투란도트가 갖고 있는 동화 같은 이야기의 힘은 실제 현실 속에서도 작용하는 것 같다. 꿈과 사랑을 현실로 만들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첫 눈에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거는 건 현실에선 불가능하다고 믿는 우리에게 오페라 '투란도트'는 말한다.
당신이 믿건 믿지 않건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게 있다고, 그 이름은 바로 '사랑'이라고.
•첫 번째 영상, 요나스 카우프만Jonas Kaufmann - Turandot, Atto III: "Nessun Dorma"
수많은 자료가 있지만 현존하는 오페라 가수 가운데 요나스 카우프만의 연주가 가장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그의 목소리에서 풍기는 강렬한 열정과 더불어 왕자라고 해도 믿을만한 외모가 가산점을 주는 것 같다.
녹음을 위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함께 하는 모습이 색다른 영상이다.
•두 번째 영상, 폴 포츠Paul Potts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설이 된 폴 포츠의 첫 등장. 이토록 우울하고 자신감 없어 보이는 사람이 노래를 시작하면서 다른 인물이 된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음악의 힘일까? 아니면 승리를 외치는 칼라프가 되었기 때문일까?
잘 훈련된 최고의 성악가들의 노래를 듣고 나서 바로 들어봐도 이 영상은 감동이다.
폴 포츠에게는 소리 그 이상의 '그 무엇'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영상, 라우리 볼피Lauri Volpi : Nessun Dorma, 80세 기념 음악회(1972)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테너 라우리 볼피가 80세 생일을 기념해서 열린 음악회에서 Nessun Dorma를 부른다. 80세에 부르는 사랑에 대한 열정과 승리. 아마도, 사랑은 그리고 음악은 80세 노인에게도 똑같은 질량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그 가치는 20대 느끼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