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원래 하나였다는, 잊고 살았던 진실에 대한 감동
많은 사람들이 공공장소에 모인다. 그들은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정보만을 갖고 있다.
그들이 모이는 곳은 광장이나 철도역, 쇼핑몰 등 대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다. 그곳엔 그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대로 존재한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정보를 갖고 있는 그들은 '그것'을 한다.
플래시몹Flash Mob의 첫 기록은 2003년 6월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 로비에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15초간 박수를 치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해프닝 같은 일이었다. 그 뒤로 사람들은 세계 각지에서 비슷한 일을 벌였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다양해지고 발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플래시몹을 하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그들의 '그것'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 걸까?
내게 플래시몹이 주는 느낌은 놀라움에서 시작해서 경이로움으로 발전하고 감동으로 마무리된다. 물론 조화롭고 잘 만들어진 경우의 얘기다.
'조화롭고 잘 만들어진 플래시몹'
플래시몹에 이런 조건이 붙는 건 좀 어색하지만, 그렇게 훌륭한 플래시몹은 내 안에 있는 뭔가를 건드린다. 그건 인간이 원래 모두 하나라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생각이다. 집단으로 헤엄치는 물고기 떼, 하늘을 날아가는 수천 마리의 새들이 보여주는 장관에 감동을 하는 것과 비슷한 그것은, 아마도 생명을 갖고 있는 모든 것이 사실은 하나에서 출발한 전체라는 인류의 큰 스승들의 이야기가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플래시몹의 결말은 이런 생각에 '현재'라고 하는 '개체성'을 부여해준다. '그것'을 마친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길을 간다. 수고했다, 성공적이었다, 다음에 보자, 따위의 인사는 없다. 그들은 모일 때처럼 각자 군중이 아닌 객체로 돌아간다.
누군가 플래시몹에 연주라는 소재를 가져왔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그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연주의 규모가 커지면서 그 감동은 몇 배로 늘어났다.
오케스트라는 플래시몹의 소재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큰 악기는 이동이 불편하고, 하나하나의 소리가 커서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와 다른 악기의 소리를 같은 템포로 연주하는 것도 어렵고, 파트별로 균형을 맞추는 것도 어려워서 합주를 하려면 반드시 지휘자가 있어야 한다는 등의 기술적인 제약 때문이다.
그래서, 더블베이스의 솔로에서 첼로와 바이올린의 합세까지는 그냥 재미있는 볼거리 정도였다. 하지만 관악기가 등장하고 거기에 팀파니 소리가 들리면 놀라움이 시작된다. 그 정도로 끝날 줄 알았던 연주였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어느새 합창소리가 들려온다. 젖먹이를 품에 안고, 어린 소녀를 목에 태운 사람들이 노래를 부른다.
Feunde schöner Götterfunken Tochter aus Elysium,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빛, 낙원의 여인들이여,
Wir betrenen feurtrunken Himmlische, dein heilgtum!
정열에 넘치는 우리들은, 그대의 성소에 들어가리!
Deine Zauber binden wieder,
가혹한 세상이 갈라놓았던 것들을,
Was die Mode streng geteilt
그대의 매력이 다시 결합시키는도다
Alle Menschen werden brueder, wo dein sanfter fluegel weilt.
그대의 고요한 날개가 머무는 곳에서, 모든 사람들은 형제들이 되리라.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의 가사가 왠지 플래시몹을 위한 이야기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직접 들을 기회가 있을까? 인간은 단지 좋은 소리를 듣기만 해도 감동한다. 더구나 아름다운 곡을 바로 옆에서 듣는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감동이 플래시몹이 주는 감동과 힘을 합한다. 그 지점에서 환청처럼 그들의 의도가 들린다.
"그래,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걸 현실에서 보여주는 거야!"
그리고 그걸 보는 나는 마치 잃어버린 엄마를 다시 찾은 아이처럼, 원래 있어야 했던 곳으로 돌아온 뒤에 느끼는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