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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람 Jan 23. 2016

송창식, '가나다라'를 외쳐서 얻은 세상

조나단 리빙스턴 시갈의 용기

노래는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하지만 막상 '가나다라' 같은 노래와 만나면 이런 생각은 쉽게 흔들리고 만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에헤 으헤으헤 으허허

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너무 많은데 이 내 노래는 너무 너무 짧고

(중략)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 번 웃자

뭐, 이런 가사로 대중음악을 하겠다는 것부터가 대단한 용기다. 물론 송창식에겐 이게 용기 따위와는 관계없는 일로 보인다. 노래를 이해하려는 사람에게나 용기가 필요한 거지.


그런데 송창식은 한 번도 아니고 계속 이런 식으로 노래한다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걱정 하나 없는 떠돌이

은빛 피리 하나 갖고 다닌다

(중략)

언제나 웃는 멋쟁이


그리고 토함산에서는 깨달은 님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기까지 한다. 님이란 물론 석굴암에 있는 불상佛像 얘기다.


그렇게 혼자 하고 싶은 말들을 노래하더니
한 번쯤 대중에게 다가가서는 담배가게 아가씨를 들려준다.

노래를 잘하면 가수로 유망하다.
가사를 잘 쓰면 작사가로 유망하다.
곡을 잘 만들면 작곡가로 유망하다.


전부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잘한다'는 게 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가수는 분명히 노래를 잘 못 부르는데 팬도 많고 성공적인 가수의 삶을 산다. 어떤 노래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로 가득하고, 어떤 노래는 늘 듣던 멜로디 같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그걸 사랑한다. 그리고 그런 걸 따라 하는 후발 주자들은 대개 실패한다.


참,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송창식에게서는, 그냥 자기 자신 이려는 노력 같은 게 느껴진다. 이런 걸 노력이라고 말하는 게 좀 어색하지만. 그는 남들이 들을 것 같지 않은 얘기라도 내면에서 떠오르면 감추지 않는다. 남들이 뭐라고 할까 봐 눈치 보지 않는다.


가벼운 세상,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것들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그는 홀로 '가나다라'를 외친 것이다. 이런 게 그의 성공 요인이 아니었을까?


송창식의 성공을 분석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워낙 특이한 그의 노래들, 특히 그의 가사들이 이런 생각을 이어가게 만들었다.

1970년 솔로 데뷔, 그때부터 이미 자기 방식이라는 게 있었던 것 같다.


한창 트로트가 주름잡던 시대에 포크로 시작해서, 포크도 아니고 클래식도 아닌,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송창식 표 음악을 들고 나온 것부터가 그랬다.


송창식도 물론 누구나 다하는 사랑의 노래를 불렀다. 사랑을 얘기하면서도 역시 송창식다운 가사가 나온다.


한 번쯤 말을 걸겠지


자기가 가서 말을 할 용기는 없는 것 같다.


언제쯤일까, 언제쯤일까~~~~?

(중략)

시간은 자꾸 가는데 집에는 다 왔을 텐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천천히 걸었으면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하회탈처럼 생긴 송창식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확실히 다르다.


사실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데, 우린 그게 두려워서 남들과 비슷해지려고 하는 것 같다. '다르다'는 게 '열등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생각이 만든 두려움이랄까.


아무튼 그런 종류의 두려움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보통의 우리는, 송창식처럼 남과 다른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나타나면 열광을 하는 거다. 물론 성공하기 전엔 대체로 비난 일색이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갈의 얘기와 같다.


성공한 누군가에 대한 열망을 가슴에 품고, 우리는 다시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려는 모습으로 돌아간다. 평범한 갈매기가 진리라고 믿으면서…

https://youtu.be/9YvWBoUXN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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