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공항에서 노숙하기 속편-
10년 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10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시간 동안 홍콩을 경유하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경유하는 시간이 아까우니 하루라도 더 발리에 있다 오라는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홍콩을 경유한 것은 가격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저가 항공사를 찾아보았으나 수화물 가격을 추가하면 별로 싸지 않은 금액이었다. 검색에 검색을 이어가다가 국민 카드에서 딱 내가 티켓을 구매하려는 날 즈음까지 캐세이퍼시픽 프로모션 행사를 하는 걸 발견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혜택을 못 받을 뻔했는데 운 좋게 비행기 티켓값을 10만 원 할인받았고, 30만 원 중반대로 한국과 발리 왕복 티켓을 끊었다. 이렇게 아껴 아껴 할인받은 비행기 값이었기에, 홍콩공항을 경유할 때 공항 노숙을 선택한 건 당연했다. 몇 시간만 버티면 되는데, 10만 원이 넘는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이든 경험하면 자산이 된다는 신조를 가진 나는,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공항 노숙을 해보겠나 싶었다.
밤늦게 도착한 홍콩 공항, 이미 자리를 잡고 누워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혹시나 하고 찾아간 리클라이너 의자가 있는 곳은 이미 만석이었고, 소파는 곡선 형태 거나 중간중간 팔걸이가 있어서 누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선택한 것은 그나마 덜 차가운 바닥에 눕는 것이었다. 홍콩 공항 바닥에 카펫 형식으로 되어있는 부분이 있어서 먼지를 따지고 말 것도 없이 바닥에 딱 몸통만 한 크기의 돗자리를 폈다. 얇고 좁은 천 조각 하나를 펴고 챙겨 온 목베개를 놓으니 순식간에 아늑한 잠자리가 완성되었다. 몸을 누이고 나니 천 하나가 더 간절했다. 덮을 이불까지는 필요 없을 줄 알았는데, 새벽의 공항은 생각보다 추웠다. 목에 둘렀던 손수건에 핫팩을 넣고 돌돌 감싸 뒷목에 댄 다음 야무지게 여몄다. 목 뒤가 따뜻하니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생각해 보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천'은 나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첫째 아이의 피부가 좋지 않아 천 기저귀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매력에 푹 빠져 둘째까지 천기저귀를 썼다. 천기저귀는 천이 조금만 얇아도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얇은 천 한 조각이 덧 데어졌느냐 아니냐에 따라 대참사의 규모가 달라졌다. 가제 수건은 또 어떠한가. 가제수건은 아이 얼굴을 닦일 때도 쓰고, 목욕할 때도 사용하고, 침을 흘릴 때나 콧물을 닦아줄 때도 유용했다. 아이들이 조금 크고 나서는 아침저녁 쌀쌀한 환절기에 목수건으로 사용하면 딱 좋았다. 가제수건은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만능 천 조각이었다.
살면서도 천 조각이 간절해지는 날들을 만났다. 내가 저지른 실수와 잘못들을 한데 모아 탈탈 털어 넣고 꽁꽁 싸매어줄 천 조각, 춥고 시린 마음의 겨울이 찾아왔을 때 바람을 막아줄 천 조각, 근심과 걱정으로 얼룩진 마음을 깨끗하게 닦아줄 천 조각, 삶을 다시 살아갈 만하게 만들어 줄 작은 천 조각이 문득문득 간절해졌고, 홍콩공항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며 이번 여행에서 내 삶에 필요한 천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아 올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벌써 첫 조각을 남편에게 받았기 때문이었다.
“엄마, 가지 마~ 우리도 가면 안돼?”
말하며 울먹이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엄마는 그럴 자격이 있어. 결혼하고 10년 동안 엄마가 너희들을 낳고 키우며 보낸 시간들을 생각하면, 엄마는 혼자서 이번 여행을 갈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해준 남편. 그 말 한마디가 내 마음 귀퉁이에 조그마하게 남아있던 미안함과 죄책감을 닦아주었다. 공항 공기가 차가웠지만, 남편의 말을 떠올리니 시린 공기도 끄떡없었다. 남편이 선물한 조각에 발리에서 찾은 조각들을 이어가다 보면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에게 꼭 필요한 조각보 하나가 완성될 거란 믿음으로 공항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몸은 비록 홍콩공항 바닥에 누워있지만, 마음만은 별 다섯 개 호텔에 누워있는 것 부럽지 않았다. 그렇게 공항 노숙을 시작으로, 애 둘 엄마의 나 홀로 여행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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