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토록 서핑을 사랑하는 이유
24년, 우리 부부는 각자의 자리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연속으로 터졌고,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듯 하루하루를 보냈다. 방전되기 직전, 남편이 선택한 것은 명상이었다. 10일 동안 명상센터에 다녀온 남편에게 툭, 진심인 듯 농담인 듯 한 마디를 던졌다.
"자기야, 자기 이번에 10일 동안 명상센터 다녀왔잖아. 그러니까 혹시 나는 이번 겨울에 발리 다녀와도 될까?"
"그래! 다녀와. 자기도 충전이 필요할 것 같아."
"진짜? 그러면 나 진짜 비행기 표 예약한다!"
그냥 한번 해 본 말인지, 진심인지 모르겠으나 그 말이 쏙 들어가기 전에 말의 끝을 냉큼 잡았다.
그렇게 생에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것도 아이가 둘이나 있는 애 엄마가 가족들을 모두 내팽개치고 나 혼자 좋자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누군가는 부럽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말했다. 말끝에는 모두 “애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할 생각을 했어요?”라는 질문이 이어졌고 어색한 미소로 부랴부랴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난생처음으로 10일이라는 기간 동안 혼자 떠나는 여행을 앞두고, 설렘과 동시에 이걸 너무 좋아하면 안 될 것 같은 미안함이 뒤섞여 그야말로 마음이 어정쩡했다. 출국 하루 전날 까지도 짐을 하나도 싸지 않은 나를 보며 남편은 “이제 짐을 좀 싸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그냥, 혼자 가는 거니까 간단하게 챙기면 돼. 그리고 저녁 비행기라 당일에도 시간 넉넉하니까 괜찮아.”라고 답하며 신남과 미안함 사이에서 짐 싸기를 미루고 또 미루었다.
출국 하루 전날 밤, 짐을 싸려고 캐리어를 열어놓고는 선뜻 짐을 채우지 못했다. ‘나는 왜 아이들과 남편을 놔두고 굳이 혼자 여행을 가야만 할까?’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만한 답을 내리지 못하면, 발리에 가서도 신나게 서핑을 즐기지 못하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공책을 하나 펼치고 ‘내가 혼자 발리에 가야 하는 이유’를 써 보았다.
사실 가족 다 같이 발리에 가서, 나 혼자 서핑을 다녀오고 그 사이 남편이 아이들과 잠시?! 있어도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남편이 낯선 땅에서 두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데 발리에서 둘을 데리고 있는 것보다, 한국에서 두 아이를 돌보는 것이 남편 입장에서도 훨씬 수월한 일일 것이다. (남편도 분명 그렇다고 할 거야. 암, 그렇고 말고!)
아이들로 인해 중간에 서핑 캠프 일정이 틀어지게 되면 ‘너희들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했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게 될 거다. ‘너 때문에’를 시전 하는 미저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시작부터 그런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 낫다.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자기의 삶을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해야만 하는 일’에 허덕이며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지혜롭게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그러기를 바란다면, 나부터 이런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아이를 잘 키우려면, 우선 나부터 내 삶을 만족스럽게 살아야 한다. 엄마 마음의 평화가 가족의 평화가 되기 때문에, 내 삶에 즐거움을 만끽하는 일이 결국 가족을 위한 일이다. (그럼 그럼! 맞다 맞아!)
일기를 쓰면서 ‘그래그래, 맞아. 이래서 혼자 가야지.’ 고개를 끄덕이다가 불쑥, 질문 하나가 올라왔다. ‘도대체 서핑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면서 서핑을 하고 싶은 이유가 뭐야?’ 쓰다 보며 떠오른 근본적인 질문은 ‘서핑의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걸까?’라는 것이었다.
나는 성질이 급한 사람이다. 무엇이든 빨리 결과를 내고 싶어 하고, 생각이 떠오르면 당장 실행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래서 얻은 성과도 많지만 한편으로 그만큼 밑바닥까지 박박 능력을 긁어가며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런데 서핑은 이런 나를 완전히 180도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지금 당장 꼭 해야만 하는’ 성미를 내려놓게 만든다. 서핑할 때면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파도를 바라본다. ‘이 파도다!’ 싶을 때는 온 힘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지만,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는다. 바다는 언제고 또 나에게 꼭 맞는 파도를 보내주기 때문이다. 서핑은 나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 준다.
실력을 키우며 기회를 기다리고, 기회가 왔을 때 최선을 다하며,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 것. 나를 위한 기회는 언제 어느 때고 또 찾아오니까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 문장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새길 수 있게 해주는 게 서핑이다. 그래서 서핑을 사랑한다. 서핑을 하다 보면,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살아낼 만하게 만들어 준다. 이게 내가 서핑을 사랑하는 이유고, 살면서 평생 서핑을 하고 싶은 이유다.
마지막엔 확신에 찬 문장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나는 여전히 학교가 좋은데,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일들이 참 행복한데, 그해 학교에서 겪은 일들은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다시 삶을 살아볼 만하게 만들어줄 특약 처방이 필요했고, 그 처방은 두말할 것 없이 서핑이었다. 본능적으로 나는 그 처방을 스스로에게 내려주고 있었다. 무엇이든 품어내는 너른 바다 앞에서 몸을 내맡기는 시간 동안, 아픔으로 얼룩진 마음을 씻어내고 다시 시작해 볼 힘을 얻고 오자고 생각하니 몸도 마음도 분주해졌다. 가족 모두 잠든 밤 홀가분한 마음으로 텅 비어있던 캐리어에 기대감을 하나, 둘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