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처음 서핑을 하던 그 순간
봄의 끝자락, 여름의 시작점에 결혼식을 마치고 도착한 발리의 공항은 이국적인 냄새와 습기로 가득했다. 결혼을 준비하며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딱 한 군데의 숙소에서 온종일 먹고, 뒹굴고, 놀면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바로 숙소 근처 바닷가 카페에 앉았다. 시원한 파도 소리와 이국적인 음악 소리가 어우러져 귀를 간질이고 알 수 없는 열대과일이 갈린 음료는 달큰하고 차갑게 입술을 적셨다.
‘그래! 이거지! 이게 진짜 여유지!’
다음 날 아침, 늦잠을 자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새벽같이 눈이 떠졌다. 언제 뜨거웠냐는 듯이 차가워진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숙소 주변을 돌아다니는데 슬슬 몸이 근질거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몸이 쉬는 것을 놔두지 않는 몹쓸 병이 도진 것이었다.
산책 후 무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자는 남편을 깨워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더위가 무색하게 손을 꼭 잡고 금세 뜨거워진 바닷가 모래 위를 늘멍늘멍 걷다가 서핑보드가 걸린 간판 하나를 발견하고 홀린 듯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레슨 장소에 도착한 순간 뜨겁게 달궈진 몸이 에어컨 바람을 맞은 듯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흘렀고 문 앞에 있는 현지인에게 나도 모르게 서핑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수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었기에 서핑을 배우는 게 딱히 달갑지는 않았겠지만 ‘신혼’은 본인이 싫어하는 것도 기꺼이 함께해주는 마음을 낼 만큼 위대했다.
“하이. 왓즈 유어 네임?”
“마이네임 이즈 굴라.”
“아! 굴라! 나이스 투 밋츄 굴라!”
굴라는 재치있게 엄지를 치켜들며 나와 남편에게 여러 사람의 손이 오간 흔적이 가득한 서핑보드를 내주었다. 바닷가에서 첨벙첨벙 물놀이나 신나게 하려던 생각으로 산 수영복이 서핑복으로 탈바꿈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충동적으로 서핑을 배우기로 했다. 서걱거리는 모래 위에서 연습하는 것이 지겨워질 때 즈음 꾸따비치에 발을 담갔다.
“웨잇~ 웨잇~”
굴라가 내 뒤에서 초보자가 타기에 좋은 파도를 고르며 말했다.
“업!”
굴라의 외침에 맞춰 가볍게 점프해 바닷물 위로 솟아 서핑보드 위에 올라섰다.
“와!” 하고 보드위에 올라선 것을 기뻐하자마자 얼굴의 온갖 구멍으로 짠물이 가득 밀려 들어왔다. 서핑했다고도 하지 않았다고도 하기 어렵게 보드를 타며 바닷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를 반복했다.
“돈 기브 업!” 굴라는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는 순간, 그 순간 포기하면 안 된다고 했다. 양팔을 넓게 펼치고 몸을 조금 더 움직여서 파도를 있는 그대로 느껴 보라고 말했다.
“오! 된다! 된다!!!” 굴라의 말을 듣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려는 순간 다시 재빠르게 몸을 반대편으로 기울였고 조금씩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뜨거운 햇살과 차가운 바닷물을 오가며 몸을 담금질하면 할수록 딱딱하게 굳어있던 마음이 유연해졌고 조금씩 더 거센 파도를 즐기게 되었다. 높은 파도일수록 넘어지려는 순간들이 많았고 비틀거리는 횟수도 더 많았지만 그만큼 나를 더 먼 곳까지 데려다주었다. 물에 빠져 힘들어 하는 남편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파도를 타는게 좋았다. 신혼여행에 와서 발리 그리고 파도와 사랑에 푹 빠졌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당분간 다시 만나지 못할 발리와 그 파도가 그리워 상사병에 걸렸다. 매일 발리의 영상과 파도타는 모습을 찾아보며 다음 해 결혼기념일 즈음에 또 발리에 오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결혼 하자마자 바로 아이가 생겼고, 육아의 바다에서 균형을 잡느라 고군분투 하게 된 것이다. 엄마가 된지 10년 즈음 조금씩 여유가 생기던 어느 날, 책상 한 구석에서 언젠가 막연히 적었던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2023년 9월 7일 발리에서 서핑하기
이 문장을 적을 때만 해도 오지 않을 것 같던 순간인데 훌쩍 23년이 지나 25년 새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래, 다시 발리에 가자. 가서 그 파도를 다시 만나자.’
하루 하루 버티듯 학교 생활을 하며 교직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그 해, 나에게 다시 발리 그리고 서핑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