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나의 코를 뻥 뚫어준 나시고랭

by 김나현 작가


원래 발리의 우기는 반짝 비가 왔다가 그치는 식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발리에 갔을 때는 하늘이 뚫린듯 하루종일 비가 왔다. 비가 오는데도 서핑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번개가 심하게 치지 않는한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서핑캠프 메니저님의 말을 들으며, ‘그래, 하루가 아쉬운데 비가 온다고 대수야?’생각하며 빨리 서핑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발리에 오기 전에도 여름이면 서핑을 했다. 아이들이 해수욕을 하는 사이 남편의 허락을 얻어낸 그 귀한 시간동안, 어떻게든 파도를 타 보려고 해도 생각처럼 서핑보드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게 다 바다 때문이야. 발리였으면 아마 더 잘 탔을텐데!'라고 생각하며 서핑보드가 고꾸러질 때 마다 발리의 바다가 더 간절해졌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발리의 바다에 도착했다.

'비가 오니까 까맣게 안 타고 오히려 더 좋지 뭐!'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 보았지만, 서핑 레슨 약속 시간이 다 되었는데 비는 그칠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1월의 발리는 우기이기 때문에, 꾸따의 파도는 건기의 젠틀하고 부드러운 파도가 아니라 한참 성이 나 있었다.



드디어 시작된 발리에서의 첫 레슨! 인스트럭터와 인사를 나눈 다음 "레귤러? 구삐?"라고 물었다. "왓?" 당황하는 나를 똑바로 세우더니 내 뒤로 가서 갑자기 등을 툭 쳤다. 오른발이 먼저 앞으로 튀어 나왔다. "레귤러!"라고 말해주며 오른쪽 발에 서핑보드와 몸을 연결하는 리쉬를 묶으라고 했다.

'아, 오른발에 리쉬를 묶으면 레귤러고, 왼발에 묶으면 구삐구나!'

항상 서핑 기초 레슨만 받아왔던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내가 레귤러라는걸 알았다.



서핑을 배울때 인스트럭터(서핑 선생님)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기초 강습을 알아듣기 쉽게 해주고, 수강생의 수준을 파악해서 이 사람이 탈 만한 파도를 알맞게 골라 보드를 밀어주며, 수강생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도 인스트럭터의 역할이다. 아직 어떤 파도가 나와 꼭 맞는지 모르는 초보에게는 타기 좋은 파도를 고르는 인스트럭터를 전적으로 믿고 그의 안목에 나의 몸을 맡겨야 한다. 그래서 서핑레슨을 찾아볼 때, 인스트럭터 한 명에 최대 수강생 두 명 정도가 적당하다. 셋으로 넘어가면 안전에도 문제가 생겼을때 대처가 늦고, 파도를 탈 수 있는 기회도 줄기 때문이다.



그날 나도 1:2 상황에서 첫 레슨을 시작했다. 두근두근 떨리는 발리에서의 첫 서핑! 신나게 타리라는 다짐과는 다르게 수없이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발리에만 오면 잘 탈 수 있을거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여전히 물을 잔뜩 먹고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레슨이 끝나갈 즈음이 되서야 조금 긴 라이딩이 가능했고, 그조차도 힘있게 쭉 밀고 나간다는 느낌 보다는 휘청휘청 중심을 겨우 잡아가며 파도를 탔다. 레슨이 끝나갈 무렵, '파도가 문제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고성의 바다에서도 파도를 제대로 타지 못했던 것은, 파도 때문도 아니고 아이들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내 실력이 한참 모자랐다. 헛헛하고 씁쓸했지만 인정해야 했다.



아침 일찍 시작된 강습이었기에, 레슨이 끝나고 나니 점심 시간이 되었다. 아침을 간단한 빵으로 떼워서 한껏 배가 고파진 나는 '밥'이 먹고 싶었다. 레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나라의 푸드코트 같은 식당이 보여서 들어갔다. 어느 식당이 좋을까 두리번 두리번 살피다가 ‘역시 사람이 많은 곳이 맛있겠지?’ 싶어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식당 쪽으로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안쪽에 위치한 식당을 찾아 들어가는 중에 여기 저기에서 호객행위가 이어졌다. ‘니하오’라고 말했을때 반응이 없으면 ‘아리가또’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래도 지나갔더니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우리말이 이어졌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걷다가 반가운 우리말이 들려 고개를 들었더니 한 여자 종업원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 사람 좋으면 음식도 맛 있을거야.’ 차마 그 웃음을 뿌리치지 못하고 가려던 식당을 놔두고 그 식당을 들어갔다.



여종업원은 나에게 메뉴판을 주면서 어느나라 사람인지 물었다.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이어서 여종업원은 발리에 온지 며칠이 되었는지 물었다.

“저는 오늘 10년만에 발리에 왔어요. 오늘이 첫날이고 여기 이 식당에서의 식사가 첫 식사예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종업원은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사실, 저도 오늘이 이 식당에서 근무하는 첫 날이에요. 첫날부터 손님이 영 없어서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손님이 오늘 첫 손님이에요. 제가 고민하다가 말을 걸었는데 이쪽으로 와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녀의 표정에는 진심어린 안도감이 서려있었다.

‘10년 만에 찾은 발리, 이 곳에서의 첫 식사, 그런데 나를 만난 그녀는 오늘 첫 근무, 나는 이 식당의 첫 손님이라니!’



“혹시, 나시고랭을 조금 맵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

나시고랭을 주문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탁을 했다. 그녀는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고, 발리어만 할 수 있는 주방 아주머니께 무어라 이야기를 전했다. “음료는 뭘로 하시겠어요?” 라고 묻는 그녀에게 “그냥 물 한잔 주세요.”라고 답했다.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물 한잔을 가져다 주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발리밸리라고 해서 발리에서는 배탈을 심하게 겪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차가운 음료나 식당에서 나오는 얼음 등은 절대로 먹지 말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랬는데 생수도 아닌 물을 한잔 떠 달라고 했으니 나를 이상하게 봤던 것이다. 초심자의 행운인지 그 물을 마시고도 나는 다행이 발리밸리에 걸리지 않았다.



초심자의 행운은 주문한 메뉴에서도 이어졌다. 나시고랭이 환상적으로 맛있었던 것이다. 밥알 하나 하나에 소스가 고루 베어 있었고, 언뜻 보기에는 간장 볶음밥 같지만 고추를 썰어 넣은 덕분에 기분좋게 매콤한 맛이 났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맛이 어떠냐고 묻는 여종업원에게 엄지를 계속 들며 “굳 굳! 쑥쓰마! 쑥쓰마!”라고 연이어 외쳤다. 주방장 안쪽에서 나를 빼꼼히 쳐다보던 이모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졌다.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호기심어리게 바라보던 관광객들이 한 명, 두 명 연이어 들어왔다.



“우리가 이 가게 코 뚫어 준거야.”

손님이 없던 식당에 우리 가족을 기점으로 하나 둘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꼭 이 말씀을 하셨다. ‘코를 뚫다’라는 표현에서 막힌 무언가가 뻥 뚫리는 시원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이 날의 나시고랭은 그녀의 코를 뚫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적당한 매콤함으로 나의 코 까지 뻥 뚫어주었다. 빵과 바닷물로 채워진 위장과 마음대로 파도를 잘 타지 못해 답답한 마음이, 적당히 매콤한 나시고랭 덕분에 개운하게 뻥 뚫렸다.



한국에서 파도를 탈 때면, '한국의 여름 파도는 탈만한게 아니라서', '발리처럼 파도가 좋지 않아서'라고 탓하고는 했다. 지금 내 실력을 외면하고 환경만 탓했다. 막상 발리에 와보니 그냥 내 실력이 모자란 것이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발리가 우기라서 파도가 안 좋아 타기 힘든거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함께 서핑캠프에 참여한 크루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탔다.



든든한 밥을 먹고난 다음이라 그런지, 팝업 자세를(보드 위에서 일어나는 자세) 연습할 힘이 났다. 한번 더 해보자는 그녀의 용기를 먹고 자란 힘이었다. 마음처럼 안 되는 일을 상황만 탓하면 그 자리에 머물게 되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된다. 마음처럼 안 되는 일을 만났을 때, 딱 한 발자국을 더 내딛게 만드는 힘이다. 그 힘이 오늘의 '나'를 어제의 '나'보다 조금씩 더 나은 사람으로 키운다.



든든해진 배를 두드리며 숙소로 돌아가는길, 서핑 캠프 오피스에 들렀다.

'환경을 탓하기 보다, 지금 내 실력을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연습할 것!'

머리로 알고 있는 사실을 몸으로 실천해야 할 때였다.

'그래, 잘 못하면 연습하면 되지!!'

거울을 보면서 굼뜨고 어색하게 팝업하는 나를 끊임없이 마주했다. 등에 땀이 주르륵 흐르고, 이마에서 흐른 땀이 눈에 들어가 따가워질 즈음 팝업 동작이 볼만해졌다.

'내일은 오늘 연습한 만큼만 해 보자.'

현재 내 실력을 인정하고,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 하는 것. 그리고 다시 내일의 파도를 즐기는 것. 이 두가지가 내가 앞으로 남은 기간동안 할 일이라는걸 마음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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