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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된 화살은 어디로 향할까?

나in나 essay 39

by 나in나

일을 하며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때가 있다. 나의 잘못도 아닌데 오롯이 받아 감당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오늘 하루가 그러했다. 아침부터 좋은 말을 듣지 못한 나에게 동료는 잠시 기분 풀고 들어오라고 나를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괜찮은 척하지 말고 바람 쐬고 오라며 나를 위로한다. 괜찮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괜찮았다.

물론 예전 같았으면 그 모든 따가운 시선과 말들을 모두 내 몫인양, 스스로 상처를 남기면서까지 끌어안고 힘들어했을지 모른다. 힘들어진 마음을 하소연한답시고 불평하거나 부정적인 말들을 누군가에게 쏟아냈을 것이다. 공공연히 나쁜 기분과 감정을 고스란히 타인에게 전하는 것이 누군가가 꺼려할 수 있는 상황임을 모르고 눈치 없이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모든 순간들이 부정적인 말로 가득 차고 따가운 시선들이 나를 향한다 해도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 몇 년 전 읽었던 책의 내용이 큰 깨달음이 되었고 나에게 영향을 준 덕분이다.


"스스로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쓰레기통은 넣는 대로 모두 받아들일 뿐 거부할 수 없다. 쓰레기로 가득 차 넘쳐나는 상황에서도 누군가가 쓰레기통을 비워야만 비워진다. 나는 쓰레기통이 아니다. 나 스스로 비워낼 수도 있고,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내 안에 들이지 않고, 조용히 흘려보냈다. 나를 헤치려는 말과 감정, 나와 어울리지 않는 누군가의 판단은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졌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한동안 그 내용을 되뇌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노력이 필요했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감정과 말에서 받아들일 것과 내칠 것을 구분하며 크게 영향받지 않을 수 있었다. 타인이 내뱉는 불편한 말과 상황 모든 감정에 영향받아 흔들리거나 마음 상하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연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산다. 대부분의 관계는 말이나 감정, 눈빛과 표정 등의 태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의 말과 감정에 휘둘리곤 한다. 그것은 기쁨이나 인정과 같은 긍정적인 것들도 있지만 때때로 분노, 비난, 혹은 모멸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도 포함된다.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이는 단지 말뿐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분노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분노를 폭발시켰을 때, 우리가 그 분노를 받아들여 함께 휘말려든다면 싸움이 되고, 상처가 될 수 있다. 부정적인 것들이 자신을 향한다고 해서, 반드시 전부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그 감정을 ‘그 사람의 것’으로 인식하고 흡수하지 않으면, 분노는 그 사람 안에 머무르게 된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은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내가 받아들이지 않은 말, 감정, 분노 등은 나를 향했다가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태도를 가지는 것은 훈련이 필요하다. 감정은 즉각적이고 반사적인 반응을 유도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는 자각과 인내 그리고 확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무엇을 들여놓을지, 무엇을 되돌려 보낼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사건과 부정적 말과 감정들은 내가 끌어안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동료는 오늘의 상황이 억울하지 않냐고 묻는다. 나의 잘못이나 실수로 인한 것이라면 즉각 인정하고 깊이 사과한 후, 바르게 처리했어야 했다. 그리고도 마음이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아니었기에, 나에게는 억울할 일도 아니었고 내 마음을 힘들게 할 사건도 되지 못했다. 내가 참을 수 없도록 괜찮지 못할 상황은 나의 실수나 잘못으로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거나, 어떤 일에 대하여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다.

내가 받아들이지 않은 화살은 튕겨나가 상대방에게 되돌아가게 된다는 말을 굳게 믿은 하루였다. 내 안에 되도록 좋은 말들을 담고, 따뜻한 시선을 간직하며 타인의 감정쓰레기들은 흘려보낼 수 있길 바랐다. 덕분에 내 눈치를 살피는 동료들은 나로 인해 불편하지 않았고,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함께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니 참 다행이었다.

거절한 화살은 결국 쏘아진 곳을 향해 되돌아가는 법이다.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무심코 쏜 화살을 거절할지 받아들일지는 오직 우리 스스로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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