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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의 존재가 건넨 말

나in나 essay 38

by 나in나



우리 마을 인근 울창한 숲 근처에 600년을 살아온 모과나무가 있다. 300년 이상 살고 있는 아름드리나무와 500년 이상을 살아낸 소나무를 본 적이 있기에 600년이라는 그 세월의 크기와 위엄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갔다.

600년을 누군가의 돌봄 없이 스스로 살아낸 모과나무는 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울창하게 가지를 뻗어내고 초록잎을 가득 달고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키도, 기둥의 둘레도, 뻗어낸 가지도 왜소했다. 멀리서 바라본 모과나무 모습에 약간의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가까이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에 한 걸음 걸음 다가갔다. 바로 앞에 다가섰을 때 내 머릿속은 조용해졌다. 600년의 세월을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 아주아주 먼 옛날, 이 땅에 뿌리를 내려 600년을 견뎌 우뚝 서 있는 모과나무. 그 안에 담긴 시간의 무게는 내가 살아온 짧은 생을 단번에 눌러버릴 만큼 묵직하게 느껴졌다.

대한민국 광복이 100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600년이라니... 이곳에서 싹을 틔울 그 무렵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보았을까. 짚신을 신고 산을 넘나드는 사람들,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비던 이들의 함성, 산으로 들로 뛰어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얼마나 많은 것을 겪었을까. 한 번 뿌리내린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을 것이다. 전쟁과 분쟁, 수많은 피와 눈물 아우성까지 그저 품어야 했을 것이다. 사람이었다면 당장 그 자리를 피해 달아나버렸을텐데, 고통도 기꺼이 인내하며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성장해 온 모과나무의 생의 깊이와 크기는 감히 상상하기 힘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역사 속의 크고 작은 변화를 몸소 겪으며 온갖 풍파를 이겨내어 오늘 이 순간까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웠다.

그 모든 시간과 풍경을 묵묵히 지켜보며 살아왔을 모과나무는 품고 있던 말보다 깊은 이야기를 소리없이 전하고 있었다. 모과나무 앞에서 나는 인내의 강인함을 보았다. 가지가 부러졌어도, 몸통을 잃어가는 세월의 상처를 지니고도 여전히 굳게 서 있었다. 존재 그 자체가 삶의 역사이자 기록이었다. 주어진 시간과 사건에 자신을 맡긴 채 웃고 울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견디고 버텨왔을 것이다. 좋은 날이 올 것을 믿고 기다렸을 것이다.

자연은 소리 없이 가르친다. 모과나무도 그러했다. 사람들은 잘 사는 법을 알고 싶어 하지만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버틸 것. 때를 기다릴 것. 산다는 건 때로는 그저 하루를 견뎌내는 일이라는 것. 600년을 살아온 모과나무는 단순하고도 어려운 삶의 방법을 터득하고 살아온 듯 보였다. 빠르게 변하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우리네 세상에서 흔들리는 순간들은 분명히 있다. 흔들리되 쉽게 꺾이지 않으면 된다고. 쓰러지면 안 된다고. 이겨내면 지나간다고. 스스로를 믿고, 시간을 견디며 자기만의 생을 살아가는 삶을 살라고.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어보는 건 어떻겠냐고 모과나무가 속삭였다. 흔들리되, 뿌리를 놓지 말라고. 잎을 떨구어도, 다시 자란다고. 가장 강한 것은, 인내와 견딤이라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이기고, 소유하고, 이루는 것이 아니라 존재함의 가치를 알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모과나무가 알려줬다.


600년을 살아낸 모과나무의 "삶의 태도"를 가 실천할 수 있을까?모과나무의 가르침처럼 깊이 있는 시간을 살아내고 지속 가능한 의지로 견디며 살아내고 싶다. 그렇게 내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나의 존재가 누군가의 삶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을 드리워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하나의 생을 묵묵히 살아낸 모과나무 같은 존재로 살고 싶다.


내 삶을 돌아볼 때, 조용한 감탄사 하나 터져 나올 수 있는 600년을 살아낸 모과나무 같은 그런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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