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in나 essay 40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 과연 잘 사는 방식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너와 나는 서로 다른 존재이기에 말과 행동에 차이가 있기 마련인데 그 차이를 이해하기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언행의 다름'을 불편하게 여기고, 그 차이를 줄이는 과정을 귀찮고 불필요한 일로 여긴다. 그것은 이해관계가 좁혀지기 어려운 까닭이기도 하다. 좁혀지지 않는 관계를 억지로 애쓰다 보면 자칫 싸움이 될 수 있다는 핑계로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대로 살면 된다고 간단한 일인 듯 말하기도 한다.
“상관할 필요 없어. 우리는 우리대로 살면 돼.” "그냥 둬, 그렇게 살라고 해."
"신경 쓰지 마. 스스로 통제하지 못해서 저러는 건데 무시해."
이런 말들을 얼핏 상대방을 인정해 주는 말처럼 쉽게 내뱉는다. 마치 개인의 가치관, 태도와 방식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 것처럼. 굳이 고치거나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서로 다를 뿐이니 간섭하지 말자’는 말과 “네가 좋은 대로 그냥 그렇게 살아라.”는 말은 사실 '네가 어떻게 살던지 나와는 상관없어'라는 의미다. 상대방에게 무관심하거나 체념했을 때 가능한 말이다. 서로의 방식이 다르더라도, 그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각자 알아서 잘살자고 하는 것은 함께 살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너는 너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는 우리는 정말 잘 살고 있는 것일까? 그저 순간을 넘기며 살아남기 위한 태도는 아닌가?
물론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간섭하고 고치려 드는 것은 독선이 되기 쉽고, 친밀한 관계라고 해도 자칫 불쾌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운 문제다. 더구나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인정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인에게는 예민한 일이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라는 말은 ‘함께 살아가는 삶’과는 먼 말이다. 모두가 이렇게 산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이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독불장군도 혼자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어쨌든 함께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아무리 능력 있고 강한 사람이라도,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말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살아가는 모든 과정들은 분명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삶은 단순히 각자의 길만 걷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협력 속에서 움직이며 살고 있다. 상대에게 관심이 생기고, 그래서 때론 다투기도 하고, 이해되지 않아서 머리를 싸매거나 고민도 하며 그렇게 살고 있다.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넘기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무관심이나 체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나도, 그들도, 우리 모두. 그럼에도 우리는 나도 너도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진정으로 우리 모두 잘살고 싶다면,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서로 노력해야 한다. ‘저 사람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저런 언행을 하고 가치관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타인의 사정을 헤아려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관심한 평화'보다, '불완전한 공감과 이해'가 더 살아갈만한 세상이라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바탕이 될 때, 우리는 함께 그리고 서로 잘 살 수 있다. 때로는 누군가가 함께 길을 걸어주기 때문에 용기가 나고 삶의 의미도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결국 관계에서의 행복은 완벽한 이해가 아닌, 불완전함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룰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결국,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니까.
그러니 한 번 더 묻는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우리는 정말 괜찮을까? 그것은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