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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버려~

나in나 essay 12

by 나in나


늘 저녁에는 손에 비닐봉지 하나 들고 집에 왔다. 몇 번을 반복하고 반복해도 긴장되는 마음을 제어하기 어려웠다. 시험이란 것은 시험이라는 이름만으로 언제나 내게 긴장감을 준다. 잠시의 순간에 그동안의 노력을 평가하고 그것이 실력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무엇보다 초긴장 상태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그동안 쌓았던 제실력을 전부 발휘하지 못하게 할까 봐 걱정이 컸다. 어쩌면 새로운 도전의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는 이번 시험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고 싶은 마음에 약국을 들 온 것이다. 황금색 포장을 두른 우황청심원을 구매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 함께 모인 우리는 하루를 보낸 이야기를 시작했다. 즐거웠던 일, 새롭게 알게 된 내용, 속상했던 일 등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기뻐하는 시간이다. 나는 우황청심원을 사 온 이야기를 꺼냈다. 생전 처음으로 사 본 우황청심원이라 그럴 만도 했다. 우황청심원을 안 먹어도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받았지만, 어쩐지 더 든든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분위기를 바꾸어보고 싶은 마음에 내기를 하자고 했다.

"우황청심원 가격 맞추는 사람에게 그 금액을 하사하도록 하지!"

모든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 중에 우황청심원을 사 본 사람은 나뿐이었다.

"금액을 예상하기가 어려운데?"

"그래, 상한선이라도 정해주던가..."

생각 끝에 나는 1천 원부터 1만 원까지 가격을 설정해 주었다.

"기회는 세 번 뿐이야. 잘 생각해!"

누구도 먼저 섣불리 가격을 외치지 않았다.


"5천 원!" C가 외쳤다.

"7천5백 원!" A가 외쳤다.

"이제 남은 기회는 한 번뿐인 건가?" 내가 말했다.

"한 사람당 세 번의 기회인 거 아니었어?"

"그래, 그렇게 해야 맞지!"

"음... 그럼 좋아. 두 번씩 기회가 남았어."


한참을 고민하던 A가 말했다.

"그 약은 몇 번 먹을 수 있는 양이야? 아님 한 번 먹고 끝이야?"

"한 번 먹으면 끝!"

"음... 한 번 먹고 끝이라... 그럼 1만 원은 아니겠네! 너무 비싸잖아?"

"8천 원!" A가 외쳤다.

"답인지 아닌지 왜 말 안 해?" C가 나에게 물었다.

"답을 외칠 때마다 오답인지 알려주면, 먼저 말한 사람이 틀렸을 경우 나중에 말한 사람이 유리하잖아. 3개씩 말하고 나면 정답이 있는지 없는지 알려 줄게. 대신 둘 다 정답을 맞히면 모두에게 상금을 수여하도록 하지!"

"오! 그렇다면 인정!" "좋아!"

A와 C는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힌트를 주자면 천 원 단위로 끝나. 백 원 단위는 없어." 웃으며 말했다.

"오! 좀 쉬워진 느낌인데? 음..1만 원은 아닐 거고..."

A말이 끝나기 무섭게 C가 외쳤다.

"3천 원!"

"이 약상자를 봐. 황금색이지? 보통 다른 약들 황금색인 거 봤어? 보통 금은 비싸다고 생각하잖아. 황금색이라는 건 그만큼 가격이 있다는 의미겠지? 이게 마지막 힌트야!"

"그럼, 1만 원은 아닐 테고... 가격이 좀 있는 약이라... 그렇다면 9천 원!" A가 말했다.

"A는 7천5백 원, 8천 원, 9천 원이라고 했네."

"5백 원 단위 답은 다른 걸로 변경하게 해 주라."

"음... 그래. 좋아."

"그럼, 7천 원!" A가 말했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C의 답이었다.

고심하는 C에게 A가 말했다.

"우리 지금까지 같은 답을 말한 적 없는데 남은 마지막 답도 겹치지 않게 말해서 정답 맞히면 우리 반띵 할까?"

"음... 아니. 같은 답을 말해도 되는 건데 굳이?"

"확률을 높여서 어쨌든 상금을 받고 나누자는 거지..."

A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 결정했어. 1만 원!"

"엥? 1만 원? 에이... 그렇게 비쌀 리 없는데..."

"그럼 C는 5천 원, 3천 원, 1만 원! A는 7천 원, 8천 원, 9천 원! 맞지?"

"정답 있어?"

"음... 두구두구두구두구......"

"정답 있어! 정답은.... 1만 원!!!"

"헉! 말도 안 돼. 1만 원이라고? 그렇게 비싸다고?" A는 깜짝 놀랐다.

"내가 A가 1만 원이라고 말할 때마다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르지? A가 정답을 가장 많이 입에 올렸어!"


1만 원을 가장 많이 말한 사람은 A인데 정작 A는 1만 원은 아닐 거라고 제외했다. 1만 원은 너무 비싸다며... 그러면서 외친 답들은 1만 원을 제외한 가장 높은 가격들이었다. A는 1만 원은 1회 복용의 약값으로는 비싸니 정답이 아닐 거라는 편견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살다 보면 사소한 것도 편견에 사로잡히는 일이 허다하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선택이 옳다고 믿으며 산다. 때로는 자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중요하기도 하나, 언제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태도를 가지고 유연한 사고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다른 선택지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며 정말 나의 결정이 맞는지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편견 앞에 누구도 예외는 없다. 언제든 우리는 오판할 수 있고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A가 1만 원은 정답이 아닐 거라는 편견을 버리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면, A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1만 원을 정답이라고 먼저 외쳤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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