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in나 essay 15
집순이인 데다 인터넷 세상에 입장하면 클릭 두세 번으로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를 살다 보니 외부 장소를 방문하는 일이 불필요하게 되어버린 지 오래다. 정말 오래간만에 급히 구매해야 할 목록이 생겨 쇼핑몰로 향했다.
가는 길은 분명 같은데 길 주변의 환경이 많이 변해 있었다. 그 길은 이맘때면 길게 늘어진 노란 꽃의 화사함이 가득했다. 개나리는 모두 사라졌고 전에 없던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예전과는 달리 좀 더 크고 복잡한 도시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개나리가 보이지 않으니 이미 시작된 봄이 이 길가에만 찾아오지 않은 듯했다. 이동하는 내내 아쉬움만 가득했다.
쇼핑몰에 들어서자 훨씬 더 크고 뚜렷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기억 속에 남아진 장소와는 전혀 다른 공간들로 변해있었다. 동선이 꽤 복잡하게 느껴졌다. 자칫 한눈팔면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혼란스러움이 압박해 왔다.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쇼핑몰 안에 있던 브랜드도 대거 바뀌었고 매장 분위기도 달라졌다. 얼떨떨한 나와 달리 오가는 사람들은 무척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 변화들은 나에게만 갑작스럽고 버거운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쇼핑으로 만족감과 행복함이 충족되지 않는다. 물건 구매를 즐기지 않는다. 생필품이 아닌 것은 신중을 기한다. 두세 달 정도 구매를 보류한 후에 그럼에도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가능한 오래 사용 가능한 고품질 상품을 구매한다. 물건을 쉽게 구매하고 쉽게 버리고 다시 구매를 반복하는 소비는 우리에게도 자연에게도 좋지 못한 행태다. 다수의 물건을 구매하지 않으니 기업이 반기지 않는 고객이려나.
더구나 쇼핑을 할 때 매장 전체를 둘러보는 일도 거의 없다. 불필요하게 시간을 흘러 보내면 마음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빠른 걸음으로 구매할 물건만 담고 계산대로 향한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구매할 디자인과 소재를 정해두고 그에 부합하는 옷을 찾느라 시간은 흐르고 피곤이 쌓여갔다. 예상치 못하게 쇼핑몰을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가득했지만 마네킹이 걸친 옷들은 무시할 수 없었다. 유행에 맞추어 제작한 신상품을 입혀두기 때문이다. 빠르게 오가면서 매의 눈으로 스캔을 마쳤다. 유행에 맞춰 옷을 구매하거나 입지 않지만 어떤 디자인이 어떤 소재가 어떤 색상이 유행인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패션은 가장 빠르게 대중 문화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게 하는 시작이므로 관심 가지고 있다.
유행이 어떻든 간에 근무복 규정에 맞는 색상을 구매해야 했다. 몇몇 매장을 둘러보니 당황스러웠다. 찾는 옷이 아예 없는 매장이 예상보다 많았다. 있더라도 옷들 사이에 숨어 있었다. 하나하나 전부 살펴보지 않으면 찾기 힘들었다. 점원에게 문의하여 빠르게 추천도 받았지만 소재나 깃, 소매, 바지통 등의 디자인을 조금씩 변형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머릿속에 정해 둔 옷과 달라서 제쳐야 했다. 다시 낯선 쇼핑몰을 층층이 이동하며 찾아다녔다. 한참을 애먹다 유사한 핏에 착용감까지 편한 옷을 발견했다. 유레카를 외치며 약 3시간가량 이어진 힘겨운 보물 찾기를 드디어 끝낼 수 있었다.
임무를 수행하고 나니 보이지 않던 다른 옷들이 눈에 들어왔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몇 년 전 즐겨 입던 스타일의 옷이 보였다. 그때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딱 그 시절 디자인과 소재였다. 예전의 옷과 닮은 옷을 보면서 반가웠던 적은 처음이다. 그 시절 활기차고 밝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옷을 다시 입으면 그때의 내 모습이 보일까 하는 생각에 순간 구매 충동이 일었다. 이미 버리고 없는 옷이었다. 내가 물건을 버렸다는 것은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쓰임을 다 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와 지금의 나는 똑같지 않다. 나는 지금의 내가 더 좋다. 나에게 조화로운 옷은 이미 충분하다. 단지 그 시절 나를 소환해 보고 싶은 충동이라면 버렸던 옷을 다시 구매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숙제를 끝낸 기분으로 홀가분하게 쇼핑몰을 벗어났다.
집으로 향하는 골목 한 쪽에서 햇빛 받아 쨍하게 빛나는 노란 개나리 줄기가 눈에 띄었다. 지칠 대로 지친 순간 얼마나 큰 반가움이었는지 모른다. 쇼핑몰로 갈 때 느꼈던 아쉬움과 허전함을 몇 송이 개나리가 듬뿍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상시 변하고 있는 시대를 환영하지만 누군가는 불편하고 부담스럽게 여긴다.도시계획에 따라 공간을 재구성하여 발전되는 모습 물론 좋다. 자연 파괴의 결과 발생하는 사건사고를 곳곳에서 목격하면서도 무작정 바꾸고 보는 파괴를 일삼는 행위는 반길 수가 없다. 지켜야 할 공간은 지켜내고 개발이 필요한 공간은 변화시켜 자연과 인간이 함께 편안할 수 있는 조화로운 세상이어야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인간의 상상을 실현시켜 점점 더 편리하고 세상이 점점 휘황찬란해질수록 마음 한편엔 무거운 짐이 쌓인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대중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필요성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화의 방향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변화를 이룬 그들이 그 후에 닥칠 수 있는 위기와 재앙도 함께 고려했는지 의문인 것이다. 공간의 변화와 함께 더 크고 무섭게 찾아올 수 있는 자연재해가 염려스러운 것이다. 그때는 그저 마땅히 겪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편리하게 지내면서 편하지만은 않은 일상이 가끔 가시방석인 이유다.
편리함과 화려함 뒤에 찾아올 지구의 건강을 염려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의류 쓰레기가 섬이 되고 있는 현실이 문득 떠올라 필요에 의해 구매한 것이지만 필요를 다 하더라도 더 오래 입을 수 있는 탄탄한 소재와 디자인을 선택한 것에 뿌듯해졌다. 인간은 어떠한 자격으로 대자연의 생명력과 욕망을 꺾어버리는 것인가. 자연을 보존하기보다 파괴하는 것이 쉽다. 파괴된 자연을 되돌리는 일은 몇 백배 몇 천배 아니 억만 배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다.
차창밖 건물 사이사이로 저 멀리 무럭무럭 자라며 넘치는 기운을 마음껏 뻗으려는 대자연이 보였다. 땅속 아래 깊숙이까지 하늘 높이까지 생명력을 펼쳐내려는 자연의 욕망이 보였다. 개나리를 뽑아낸 그 자리에 심은 빌딩숲 보다 더 높이 솟구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