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in나 essay 16
친구들에게 농담도 못한다며 너무 진지한 거 아니냐는 말을 듣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왜 그리 진지했는지 모르겠다. 누구의 말이든 모두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해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농담을 건네는 성격이 아니어서 남들도 나와 같을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왜 재밌는 사람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재밌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고, 유머를 건네는 사람을 불쾌하게 여긴 것도 아니다. 자라난 환경이나 교육 내용에 영향받아 성장하는 것이 사람이지 않은가. 나 역시 과묵한 부모님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통화는 용건만 간단히 하라는 말씀과 밥상 앞에서는 잡담을 금하라는 식사예절 가르침의 영향이 가장 컸다. 말을 많이 하면 좋지 않다는 생각을 은연중 품고 있었다. 말없이 조용한 데다 말하기 앞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고민하는 재미없고 답답한 성격이었다. 그렇다 보니 크고 작은 문제들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는 얼마나 진지하고 심각했을지, 얼마나 크고 중요한 일이라고 혼자 심각해서 고민했던 건지 지금 상상하면 웃음이 난다.
그 성격에서 벗어나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먼저 왜 매번 심각한 건지, 뭐가 그렇게 고민스러운 건지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했다. 그럴만한 일들인지 크고 작음, 중요함의 정도에 따라 구분해 보았더니 별 것 아닌 것들이 더 많았다. 가볍게 생각나는 대로 결정해도 될만한 소소한 일도 많았다. 중대한 일은 지금까지 인생 전체를 통틀어봐도 몇 번 없었다. 나는 매사에 왜 그리 심각했고 뭘 그리 고민했던 것인가 허탈함이 느껴졌다. 깊이 고민하고 신중을 기하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문제들까지도 심각하게 끌어안고 있었으니 진지하려고 했던 모습은 오히려 꽉 막힌 답답함으로 보였을 게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순간을 헛되이 살지 말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은 순간순간 주어지는 모든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게 했다. 물론 신중하게 고민하고 선택하면 그만큼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누구에게든 피해가 되면 안 되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순간의 선택이 모여 하루를 결정하고 하루하루의 삶이 인생의 전체를 이룬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좋았으나 모든 문제에 매사에 심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누구라도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문제를 맞닥뜨리면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잘못 결정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도 크다. 당장은 무척 고민스럽고 어려운 결정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일상 속 대부분의 결정과 선택들은 시간의 흐름과 동시에 잊히는 일들이 더 많은데도 말이다. 지금 닥친 문제가 별일 아니라고 여겨진다면 가볍게 넘길 수 있어야 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문제들이 모두 중차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 후로 무턱대고 고민하기에 앞서 이 문제가 두고두고 의미 있는 일로 남아질 것인지 그 가치를 잠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 가치를 꾸준히 빛낼 일이라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신중하게 고민하고 선택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시 자신이 갖추고 있는 지식, 가치관, 도덕성 등의 기준에 따라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한다. 하지만 살면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방향에 따라 선택의 기준들은 조금씩 변하기도 한다. 더 추가되어 확장되거나 축소된다. 유사한 상황이 추후에 다시 일어난다면 지난번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확률도 높다. 성장하고 발전하며 변화된 만큼 문제를 더 정확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민하고 내린 결정도 당시에만 최선일 수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하니 선택과 결정의 부담감을 조금씩 떨쳐낼 수 있었다. 최고의 선택이라며 내린 결정도 지나고 보면 차선책일 수 있다는 것을 삶이 알려 주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의 여유도 생기기 시작했다. 유머가 들리고 농담이 들리고 가볍게 넘겨야 할 상황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고 새로워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 신중에 신중을 기울이며 힘겨워할 필요 없다. 한 번뿐인 인생을 잘 살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공감한다. 모든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해서 성공과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오히려 유쾌할 수 있는 순간도, 웃어넘길 수 있는 문제도 진중한 탓에 놓쳐버릴 수 있다. 문제에 적절한 고민을 통해 알맞은 선택과 결정을 하고 진지함과 유쾌함이 조화로운 인생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진지하게"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인생도 결국 그러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