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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릇하고 짓궂은 작가 연대기
이러다 유명해지면 나는 어쩌나
1-2. 날카로운 첫 영화의 추억
by
얼굴씨
Jul 12. 2023
유명해지면 어쩌나
유명해질까 봐 일찌감치 마스크로 위장술
티브이에서만 보던 작은 체구의 그 개그맨이 바로 우리의 왕작가님이었다.
희곡 대본 용도로 쓴 작품은 꽤 신선하고 탄탄해 보였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아주 날 것의, 하지만 아주 노련한 이야기였다.
출발을 이렇게 코미디로 해서인지, 그 후로 오랜 작가 생활 동안 개그맨들과 일 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항상 날 전방위적으로 자극하는, 웃기는 스티븐 잡스류의 종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 원작에 영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2시간 남짓한 시나리오를 만들면 되는 거였다.
신선하게, 알지?
문창과 남 1 여 1 그리고 힙한 홍대 공대생 남 1로 구성된 신선한 대학생 작가팀이 꾸려졌다.
멋진 대사는 왕작가님의 몫이고, 우리들은 주로 그 씬에 어떤 ‘신선한’ 장면을 넣을 것인지, 이 씬 다음에는 어떤 내용의 씬이 ‘신선하고’ 재미있을지 등을 구상하는 일이었다.
A4 80매를 내리 써버리는 독보적 손가락 노동꾼인 나로서는 참으로 감내하기 지루한 시간이었다. 내 손가락은 딱히 쓸 데가 없었고, 내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씁
흠
되겠니?
등의 신선하지 못한 반응을 이끌어 낼 뿐이었다.
신선하지 못한 건 문창과 남 1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구질구질한 문창과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미서부 유학생, 버터스런 느낌이 강하던 강남에 사는 친구였다. 앞으로 내려오는 두 가닥의 더듬이 머리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둠칫둠칫 한껏 그루브를 타던 그 느끼함이란.
원포더 머니 앤 투포더 쇼
지누션과 함께라면 너는 챔피언
랩 가사 옆에 그려놓은 수많은
알감자 같은 주먹들.
챔피언의 핵주먹일까 알바비나 어서 내놓으라는 엄포의 주먹일까.
본인의 힙합스러운 아이디어를 단 한 번도 허락받지 못한 자의 앙증맞은
반항이었을까.
딱히 진척 없는 회의가 연거푸 길어지자,
강남
에미넴을 꿈꾸던 버터스런 그 친구는 쿨하게 작가직을 내려놓고 홍대 클럽 황금투구로 튀었다.
나의 희망은, 우리의 브레인 홍대공대생 남 1이었다.
야, 공대 다닌다고 이런 거 다 못 고쳐.
문창과 니들도 아무거나
막
써
보라고 그러면 다 쓰냐
아기 이름도 지어주고
매장 상호명도 지어주고 3일 만에 시나리오도 쓰는 문창과
다니는 나는, 딱히 반박은 하지 아니하였으나.
공대생 1은, 모른다고 하면서도 기계치 무리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맘껏 펼쳐주었다.
우리는 그에게 각종
전자기기의 사용법, 전구 갈기,
노트북 복구 등을 질문하고 또 야무지게 학습했다. 사무실 안의 복사기 정수기 그런 것들을 몇 번 고치고는 딱히 더 손 볼 게 없었는지 공대생 1도 작가팀에서 어느덧 사라져 버렸다.
다음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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