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되면 단단한 알집에서 부화한 200여 마리의 사마귀 새끼들이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가 바람에 흩어진다. 6-7월이 되면 무럭무럭 자라 약충(불완전 변태를 하는 곤충의 애벌레), 그러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사마귀의 형태를 갖추게 되는데, 주변 풀숲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왕사마귀는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마귀 종種인데, 이름처럼 덩치가 크고 포악스럽다. 좀사마귀, 참사마귀, 넓적배 사마귀, 그 어느 종에 붙여 놔도 다 이겨 먹는(실제로 먹는다) 최고로 '쎈 놈' 왕사마귀님을, 아들은 사랑해 마지않는다. 자작나무 같은 얇고 허연 팔로, 없는 알통을 만들며 마동석이 되기를 소망하는 본인에게 딱 귀감이 될 만한 곤충계의 최상위 포식자이기 때문이다. 초록이 더 이상 초록일 수 없을 만큼 싱그러움이 터지던 초여름에 아들은 결국 사마귀계의 마동석, 4령 왕사마귀를 채집했고 집에서 기르게 되었다. 반려사마귀의 성姓은 마동석의 마, 이름은 최고로 강하라고 대빵, 그렇게 '마대빵'은 우리 가족이 되었다.
얼마 간은 대빵이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혹여나 내게 점프라도 할까 봐 저만치 피해 서서 서툴게 인사를 했다.
아, 아, 안녕?
진중하고 점잖은 성향의 대빵이는 우리가 1박으로 여행을 간 사이 5령에서 6령으로 넘어가는 탈피를 마쳤는데, 새초롬한 새색시의 저고리처럼 그 투명한 껍질을 몸 밑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있었다. 가느다란 여섯 개의 다리까지 섬세하고 완벽하게, 몸전체의 실루엣을 따라 허물이 벗겨진 그 모양은 경외스럽기까지 했는데,
사실, 좀 많이 기특했다.
대빵이의 탈피 껍질
내가 알 바 없는 대빵이의 전前 생애가, 바람처럼 가벼운 이 탈피 껍질에 온전히 녹아 있을 것만 같아서 감히 버리지 못하고 잘 간직해 두었다. 사마귀는 평균적으로 1-7령의 약충 기간을 거쳐 날개가 돋는 성충이 되기까지 약 7번의 탈피를 한다. 내 몸에 꼭 맞는 옷으로 7번을 갈아입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 시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도 해 낼 수 없는 완벽한 셀프 스타일링이 아닌가. 아쉽게도 1-3령의 어린 사마귀들은 이 탈피 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탈피부전'을 겪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더라도 심각한 기형으로 앞으로의 충생蟲生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죽음을 포함하여 200마리의 알에서 시작해 성충이 되지 못하는 사마귀가 99% 이상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8월 경에 만나게 되는 성충 사마귀는 그 1%의 대단한 생존 확률을 뚫은 존귀한 생명체인 것이다. 그래서 연탄재만 발로 쉽게 차면 안 되는 게 아니고 이 사마귀님들도 제발 장난 삼아 죽이지 말라는 당부를,
왜 버그포비아(bug-phobia)인 내가 하고 있는 것인가.
이 사마귀들의 용맹함도 그 죽음에 한몫을 한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사자성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녀석들은 커다란 수레가 와도 절대로 쫄지(?)않고 끝까지 공격자세를 취한다. 두 앞다리를 들고, 어디 한 번 덤벼봐라, 하는 자세로 꿋꿋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여름과 그 이후에 도로에서 로드킬을 가장 많이 당하는 곤충 중 하나가 사마귀다. 자동차가 달려와도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맞선 채 생의 마지막을 허망하게 마무리한다. 그들의 수많은 죽음은 곤충사, 인류사에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못할 것이며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미물微物중에 미물이다.
사마귀보다 고등한 생명체인 나는 무엇을 남기고 죽게 될까.
피 끓는 청춘이었을 때, 전쟁 영화에 나오는 엑스트라는 되지 말자 생각했다. 어느 무리에 끼어 있다가 주로 총성이나 폭발음과 함께 사라지는 서사없는 인물은 되지 말자 다짐했다. 살다 보니, 나를 거쳐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에서 나는 대부분 엑스트라였음을 깨닫는다. 누구에게는 엑스트라였고 누구에게는 주연 혹은 조연이었을 나는, 주어진 역할이 무엇이든 그저 감사하게 하루를 살아내는 임무를 맡고 있다. 서사 속의 비중이 무엇이든 나는 내 삶을 그저 열심히 살아나갈 뿐, 어느 엑스트라가 찰나의 한 장면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듯이 말이다. 그 누가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나는 아니까.
대빵이와 나는 각각 인간과 우주의 서사 속에서 보자면 결국 같은 미물일 뿐일텐데 친구여, 너도 나도 거대한 담론은 집어 치우고 그저 오늘 하루 행복하게 살아보자꾸나.
영화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中- 어떤 역할이든, 오히려 좋아!
말 없는 대빵이를 돌보다 보니 머릿속 생각이 커지는데 이런, 벌레에게서 철학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