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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굴씨 Aug 11. 2023

사마귀 동족포식은 끔찍하다면서

곤충으로부터 사람 3.



사마귀가 끔찍했던 이유 중 하나는 동족포식(cannibalism)이다.

대빵이를 키우고 얼마 후, 우리집 25층 현관 앞에 아주 작은 사마귀가 나타난 적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온 건지 누군가에게 묻어온 건지, 이 높은 곳까지 찾아와 준 첫 손님이었다. 대빵이를 키우고 나서부터 이런 식으로 문 주변에 있거나 옷에 딸려 오거나 하는 사마귀들을 종종 보게 되었는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세탁기를 사려고 마음을 먹으면 길에서, 마트에서, 드라마에서 온통 세탁기만 보이는 것처럼 뇌가 지배를 당한 것일까, 아니면 사마귀 페로몬이 내 주위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들은, 동그마니 있던 작은 녀석을 조심스레 손등에 올려 집안으로 들여왔다. 



우리집에 놀러온 아기 사마귀, 정말 미안해


대빵아귀여운 친구가 놀러 왔어     


다정한 눈빛으로 한참 아기 사마귀를 바라보다가 아들은, 대빵이의 커다란 케이지 안으로 녀석을 넣어주었다. 대빵이는 고개를 휙 돌리고 이리저리 살피는 몸짓을 하며 작은 친구를 반갑게 맞이하고는,     


먹 었 다.


사마귀는 자신보다 작은 개체는 그것이 동족이든 뭐든 가리지 않고 한낱 먹잇감으로만 생각한다. 교미를 끝낸 암컷이 파트너인 수컷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은 꽤 유명하다. 막 알집에서 나온 개미만한 사마귀 새끼들을 한 케이지에 몰아 두면 200여 마리쯤 되는 이것들을 어떻게 다 키우나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으로 구매한 먹이용 초파리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급히 목만 축인 녀석들은 알아서 개체수를 조절한다. 서로를 잡아먹다가 남은, 떨어져 나간 사체 조각들을 치우며 손을 발발 떨었던 사육 과정이 떠오른다. 

아주 딱딱한 껍데기를 가진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를 제외하곤 웬만한 곤충은 다 잡아먹는 육식 곤충의 최고 포식자 사마귀. 워낙 포악한 곤충이다 보니, 장수말벌, 뱀, 그리고 작은 새까지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잡아먹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마귀 vs 말벌 



대빵이는 앞다리로 잽싸게 어린 것을 낚아챈 후 머리부터 아삭아삭 갉아먹기 시작했다. 대가리가 없어진 아기 사마귀는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작은 몸통을 이러저리 움직이며 강렬히 저항했다. 머리 부분에 억제 중추가 있다는데, 그 기능을 상실한 목 잘린 사마귀는 직전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채 신들린 무당처럼 생의 마지막 몸짓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안 돼!!!     


아들도 동족포식을 하는 대빵이의 모습에 몹시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나는 멀찌감치 서서 정말 진짜 전혀 보지 않으려 했는데, 아들 눈물을 닦아주랴, 두 사마귀 놈들을 떨어뜨리려 케이지를 두드리랴 어쩔 수 없이, 좀비처럼 덜렁거리는 목 잘린 어린 사마귀의 끝을 함께 하고야 말았다.      


인간의 기준에서는 끔찍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불특정 시민을 향한, 테러에 준하는 사건 사고가 빈번한 요즘, 난 로드킬 당하는 사마귀와 동족포식을 하는 사마귀를 떠올리며 하염없이 연약하고 애처롭거나 혹은 부끄럽고 포악스러운 인간을 생각한다. 사마귀만큼 약하거나 사마귀보다 못한 인간들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잠시 생각도 해본다. 동족을 포식하는 것과 동족을 해하는 것이 고작 미물과 고등 種의 차이일까. 




본문 사진 출처- 네이버 카페 '액션피겨' rusius님 작품


다음 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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