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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굴씨 Aug 09. 2023

벌레공포증인데 반려곤충이라니

곤충으로부터 사람 1.

*bug phobia- 벌레나 곤충을 유별나게 싫어하고 겁을 냄. 벌레공포증




너희들에 대한 나의 '싫음'에 관하여


 아들은 곤충을 정말 사랑하지만 애석하게도 엄마인 나는 버그포비아를 ‘앓고’ 있다. 사자는 초원에서 함께 뒹굴며 추억을 나눌 수도 있을 것 같고, 혹여나 사나워져서 나를 공격한다면 주먹 불끈 쥐고 싸울 수도 있겠다. 뱀은 축축해서 상당히 불쾌하겠지만 꾹 참고 목덜미에 한번 감아 볼 수도 있을 듯하다. 맹수나 파충류가 좋다는 게 아니라, 그 정도로 벌레가 싫다는 것이다. 

다리가 아예 없거나 너무 많고, 지나치게 빠르거나 징그럽게 구물구물거리고, 꽤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작은 마찰에도 체액이 팍, 터질 것 같은 그것들이 나는 너무 무섭다. 왜 터질까. 왜 끈적거리며 불쾌한 색을 띠는 그런 액체를 내뿜을까. 바퀴벌레를 잡는다는 것은 뭔가로 탁, 쳤을 때 팍, 하고 터져 나오는 그것이 역겨워서 더더더더더 끔찍한 것이니까. 아니지, 예쁜 색이라도 싫다. 사마귀는 배 부분이 엄청 연한데 그게 터지면 파스텔 빛의 연한 고추냉이 같은 체액이 흘러나온다. 몹시 청량하고 보드라운 색이라, 그 본질을 깨닫게 될 때의 상충하는 이질감은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액체가 아니라 고체라면? 벌레가 터지면서(죽으면서) 형형색색의 별사탕이 초봄의 목련처럼 팡팡 튀어나온다고 해도 싫을 것이다.      



으 정말 싫어 벌레 싫어


 

아들에게는 곤충, 나에게는 벌레라 불리는 이 녀석들 때문에 여름밤은 나에겐 지옥 그 어디쯤이다. 산책을 좋아하는 나는 주로 야심한 시간에 아파트 단지를 슬렁슬렁 걷곤 하는데, 여름밤엔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벌레떼와 바닥에서 기어 다니는 것들을 피하느라 온몸에 근육통이 생길 지경이다.     


꺅 앗 악 윽 헉 엇 으악 웩     


입에 뭐라도 물고 다녀야 하나.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비명들이 이웃들을 얼마나 긴장하게 하고 불쾌하게 할지 부끄럽기 그지없다. 

입주 때 심었을 나무들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높게 자랐고, 또 다른 낮은 나무들은 가지마다 작은 꽃을 달고 있거나 무슨 맛일까 궁금한 예쁜 열매들을 품고 있다. 곳곳엔 작은 연못도 몇 개 있는데, 각종 벌레들이 달콤한 안식처로 삼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작은 풀잎 뒤에서, 잔잔한 물 아래서, 깨알같은 꿈을 꾸며 언제든 지나가는 나에게 덤벼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니들은 내가 덤빈다고 생각하겠지벌레들아.     




아들은 기필코 곤충을 키우겠다고 했다. 엄마는 동물 털 알레르기가 극심하니 강아지나 고양이는 당연히 패스. 엄마는 비린내 때문에 생선도 못 먹겠으니 물고기류 패스. 햄스터는 쥐라서 패스. 파충류는 그 옛날 전설의 티브이 시리즈 ‘V’에서 다이애나가 얼굴 껍질을 벗기며 흰 쥐를 통째로 삼키는 것을 본 후 트라우마로 패스, 조류는 조류 독감 때문에 패스. 먹던 과일에서 씨를 몽땅 모아 그거라도 키우겠다며 발아 과정만 수십 차례, 감, 사과, 자몽, 오렌지, 참외, 수박, 자두, 복숭아 등 흙 위에 곰팡이만 남기고 썩은 이쑤시개처럼 사라지기 일쑤여서 패스.      


너라는 인간 하나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단다     


충분했지만, 이러저러한 협박과 협상을 거쳐 아들은 결국 사마귀를 키우는 데에 성공했다. 어항 근처에서는 입으로만 숨을 쉬는 단련을 해서 물고기를 키웠을 걸, 아니면 가끔씩 항히스타민제 도움을 좀 받고 강아지를 키웠을 걸. 돌고 돌아 피하고 피해 세상 제일 극혐인 벌레, 사마귀를 키우게 되다니.     


내가 파브르를 낳은 줄     


그래 표본일 때가 좋았던 거야. 아들이 한참 사랑에 빠졌던 장수풍뎅이. 결국 살아있는 벌레를 키우게 되었다.




본문 사진 출처-https://blog.naver.com/jaeookn/40203363690


다음 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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