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신혼생활 vol.2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
오, 대박... 이태오(박해준 분)의 외침에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놀란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힘차게 고갤 저었다. 내가 이태오 같은 놈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든 보여줘야 했다. 드라마 한 편을 보고나면 고개가 뻐근했다.
금요일 밤이면, 아내와 함께 <부부의 세계>를 본다. 이제 일상이 돼버려서 드라마가 종영하면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함께 걱정하는 수준이다. 결혼을 하고나니 유치하기만 했던 불륜 드라마가 흥미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래서 어머니들이 불륜이 단골 소재인 막장 드라마에 빠져드는 게 아닐까 싶다. 불륜을 불륜으로 되갚아주면서도, 서로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드라마의 내용이 과하다 싶으면서 현실적이다.
<부부의 세계>에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면?' 결혼하기 전까진 매우 심플한 답을 가지고 있었다. '이혼하면 되지.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연애하다 헤어지는 거나 결혼하고 이혼하는 거나 내심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었나보다. 그래서 불륜 드라마가 결코 재밌을 수 없었다. 답이 간단한 문제인데, 주인공들이 골머리를 싸매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난 지금, '바람=이혼'이라는 공식이 그다지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혼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실감한달까. 결혼을 하고 나서 아내와 보내는 시간은 '데이트'가 아니라 '생활'이다. 아침이면 부스스한 얼굴로 함께 일어나고, 집을 나설 때면 무사히 돌아오라 인사한다. 집으로 돌아와선 함께 밥을 차려먹고, 직장 상사 뒷담화부터 코스피가 얼마 올랐네, 부모님 생신이 언제네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러다 침대에 누워 주말 계획을 신나게 짜고는 잠이 든다. 데이트할 때처럼 특별한 이벤트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생활 자체를 온전히 공유하는 셈이다.
한 사람의 생활은 세월을 먹고 자라 그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가 된다. 그러니 이혼은 연애를 하다 이별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자신이 살아왔고, 살고 있는, 앞으로 살아갈 세계를 통째로 깨뜨리는 것이니까.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지선우(김희애 분)가 바람 난 이태오(박해준 분)를 용서하기로 결심했던 것도, 결국엔 자신의 세계였던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고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바다에 뛰어들었던 것도, 고예림(박선영 분)이 바람이 습관인 손제혁(김영민 분)을 쫓아내지 못하는 것도, 여다경(한소희 분)이 다시 바람 난 이태오(박해준 분)를 지키기 위해 이준영(전진서 분)에게 집착하는 것도 말이다.
다시 금요일을 기다린다. 힘차게 고개 저을 준비를 하면서.
마지막회엔 <부부의 세계> 속 등장 인물들의 세계가 제자리로 돌아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