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신혼생활 vol.6
요즘 들어 같은 시기에 결혼한 한 친구와 만남이 잦다. 커피 한 잔 마시고 헤어지는 게 전부지만, 공감할 만한 얘기가 많아 시간가는 줄 모른다. 가장 재밌는 건 이 친구를 보고 있으면, 제3자의 시선으로 내 삶을 관찰하는 기분이 든다는 점이다.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까진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엔 어느정도 보편적인 모습이 있는 것 같다. 덕분에 이 친구를 만나고 나면 꼭 결혼 생활과 관련해 생각할 거리가 생긴다.
며칠 전엔 이 친구가 불쑥 약통 하나를 꺼냈다. 마치 이것 좀 보라는 듯이 테이블 한가운데 올려놓더니, 뚜껑을 열어 알약 몇 알을 입속에 털어넣었다.
뭐냐, 그건? 어디 아프냐?
요새 엽산 먹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애써 무신경한 척, 친구가 설명했다.
애 가질려고. 남자도 먹으면 좋대. 넌 계획 없냐?
아... 나는 아직,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잖아.
애 안 가질 거면 결혼 왜 하냐? 같이 살고 싶은 거면, 결혼 안 해도 할 수 있잖아. 그렇지 않냐?
애도 결혼 안 하고 낳을 수 있어, 임마. 암튼 아직 계획 없어.
엽산 몇 알로 시작된 자녀 계획에 관한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주로 친구가 말하고 나는 듣는, 다소 일방적인 대화였지만.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친구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아이에 대해 아주 생각하지 않을 순 없는 것 같다. 낳을 생각이든, 아니든 간에.
시대는 엄청나게 달라졌지만, 결혼이 자녀를 전제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짙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녀 계획을 묻고, 낳을 생각이면 빨리 낳는 게 낫다느니, 그래도 신혼 생활을 즐겨야 한다느니 이러쿵 저러쿵 일관되지 않은 조언들을 쏟아낸다. 일단 좀 먼저 낳으신 분들끼리 합의부터 하고 알려주시면 좋으련만.
사실 요즘들어 남의 집 아이가 부쩍 예쁘게 느껴지긴 한다. 얼마 전까지 아내와 본.방.사.수!를 외쳤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출연한 '우주'를 보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우주' 닮은 자식을 낳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산책나간 동네 공원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다가 그 아이들 중 하나가 놀다말고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모습을 상상했다.
너무 귀엽다. 어쩜 손이 저렇게 쪼꼬매?
그러게. 약간... 심장 아프다.
아내도 아이들이 예쁘긴 마찬가지인지 종종 이런 대화가 오간다. 남의 집 아이가 예쁘게 보이기 시작하면 아이를 낳을 때라고들 하길래 넌지시 물었다.
우리도 애기 낳을까?
물어보면서도 아내가 '그래!'라고 대답해버리면 어쩌지 싶어 초조했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건 아닌데, 또 막상 낳자니 왠지 불안했다.
당장은 말고, 언젠가는?
여기까진 예상 범위에 있던 적당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말은 예상 밖이었다.
근데 나는 낳는 게 무서워, 키우는 것보다. 당신이 임신한다면, 당장이라도 가질 생각 있어.
아내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겪을지 모를 걱정 거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임신해서 배 속에 아이가 생기면 몸도 무거워질테고, 조심해야 할 것도 많아지고, 회사 다니기는 지금보다 훨씬 힘들테고, 입덧이 얼마나 심할지도 걱정되고, 아이 낳을 때는 또 얼마나 아플 것이며...
아내의 말을 듣다보니, 그저 아이가 예뻐 보여서 낳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천진무구한 발상인지 실감됐다. 아이를 낳는 데 있어서 만큼은 아내의 고민이 훨씬 크겠구나 싶어 숙연해졌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아내와의 대화 이후로, 지하철을 타면 습관적으로 임산부 배려석을 보게 된다. 누가봐도 임산부가 아닌, 임산부일 리 없는 사람들이 배려석에 앉아 있는 걸 발견하면 유난히 얄밉다. 소심한 마음에 일어나라 말은 못하지만, 앞에 서서 실수인 척 휴대폰이라도 머리 위로 떨어뜨리고 싶은 심정이다.
임신과 출산. 신혼부부에게 당면한 가장 복잡한 문제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임신과 출산에 관한 공감할 수 있는 고민들을 종종 다룰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