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신혼생활 vol.3
"깻잎을 왜 그렇게 먹어?" 밥을 먹다 문득 아내가 물었다. 아내는 식탁 한가운데 놓인 반찬 접시에서 깻잎장아찌 한 장을 조심히 떼내고 있었다. 떼낸 깻잎장아찌를 밥그릇으로 옮겨, 야무지게 밥을 감쌌다. 밥알을 단단히 품은 깻잎은 그대로 아내의 입속에 들어갔다.
나는 젓가락으로 깻잎을 집어 입에 던지듯 넣었다. 그러곤 다시 밥을 퍼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먹으면 짜지 않아?" 깻잎 따로 밥 따로 입에 넣는 내 모습이 아내의 눈엔 상당히 낯설었던 모양이다. 아내의 목소리엔 약간의 걱정마저 깃들어 있었다. "깻잎 먹고 씹기 전에 빨리 밥을 먹으면 돼. 그럼 안 짜."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내놓은 내 해명에, 아내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아내와 나는 연애 시절부터 여러가지 면에서 많이 달랐다. '영화는 자고로 심각해선 안 된다'는 지론을 가진 아내를 구슬러 독립영화 상영관에 간 적이 있었다. 한창 영화에 몰입되어 갈 때쯤, 어디선가 잔잔한 빗소리가 들려왔다. 영화 속 하늘은 분명 참 맑은데, 역시 연출이 특이하구나... 싶었다. 그런데 고갤 돌려보니 옆자리의 아내가 목이 아슬아슬하게 꺽인 채 작은 소리로 코를 골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영화 대신 아내의 조는 모습을 한참이나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영화 취향만큼이나 좋아하는 음식도 달라서, 밥 때가 되면 눈치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고기 반찬이 없으면 밥을 못 먹을 만큼 육식파인 나완 달리, 아내는 육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내 기준에선 도무지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샐러드를 제일 좋아했고, 쌀국수나 탄탄멘처럼 낯선 향의 외국 음식들, 떡볶이 같은 군것질 거리들을 좋아했다. 단순히 식성만 다른 게 아니라 식당의 느낌(?)에 대한 선호에도 꽤 큰 차이가 있었다. 나는 왠지 은둔한 고수가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을 지키고 있을 것 같은 추레한 외관의 식당들을 선호했지만, 깔끔함과 위생을 최우선으로 꼽는 아내에게 그런 식당들은 되도록 피해야할 곳들이었다.
결혼 이후, 아내와 처음 다툰 건 집 청소 때문이었다. 나는 이 문제가 아내와 나 사이에 일종의 '역치값'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는 자극의 세기가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청소가 필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더러움의 정도가 우린 너무 달랐다. 덕분에 더 빨리 더러움을 느끼는 아내가 늘 먼저 청소를 시작했고, 아내는 그게 불만이었다. 이른바 물때 사건이 대표적인데, 화장실에 물때가 끼어서 다급하게 청소도구를 찾는 아내를 향해 나는 "천천히 하자. 그냥 물때야. 물이야, 물!"이라며 여유를 부렸고, 아내는 내게 "빨리 해야 돼! 물때야. 물이 아니라 때라고, 때!"라고 독촉했다. 같은 걸 보고도 우리의 '역치값'은 이렇게나 달랐다.
우리는 이렇게나 다른데도 결혼을 했고, 매우 만족하며 살고 있다. 연인 혹은 부부 관계에서 '다름'은 주로 걸림돌로 묘사되곤 한다. 엊그제까지 세상 가장 행복해 보이던 연인들이 성격 차이를 이유로 돌연 이별 선언을 하고, 인터넷 이혼 상담 글엔 성격 차이가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날 때면 성격이든 취향이든 뭐라도 비슷한 점을 찾고, 자신과 다른 사람과는 막연히 관계를 이어가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점이 많은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까지 해서 살고 있는 경험자로서 나는 오히려 나와 다른 아내의 모습들이 좋다. 성격이나 취향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할 뿐 아니라, 삶이 훨씬 풍부하고 윤택해지는 느낌이다. 아내 덕에 발견한 재밌는 영화들이 하나 둘씩 쌓여가고 있고, 고기밖에 모르던 촌스러운 입맛이 개선되어 가끔은 무려 고기 대신 샐러드가 당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매일 물때가 없는 쾌적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아내는 점점 나를, 나는 점점 아내를 닮아간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나 달랐던 우리는 언젠가 같은 모습으로 함께하게 될까. 서로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