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버리기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by 생각하는냥

몇몇 사람들이 길을 막고 꾸물거렸다. 그들의 손에는 모두 폰이 들려 있었다. 그들을 피해 지하로 내리 달렸다. 그러다 바로 한걸음 앞에서 지하철 문은 무심하게도 닫혀 버렸다. "신발"이라는 아쉬움의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앞전에 폰을 가지고 꾸물거리던 누군지도 모를 그 사람들에게 날린 신발이었다. 그들의 귓구녕에 귓밥이 0.1mg 늘어나기를 바란다.


그보다는 그 다음이 문제였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한걸음 늦은 타이밍은 연이어 일어났다. 갈아타는 지하철과 버스를 모두 시야에 보이는 거리에서 연달아 놓쳐버린 것이다.


이런 일이 줄이어 일어나니 하루가 기분 좋을리 없다.

어제 연이어 발생한 카드결제 오류 사건에도 짜증한번 내지 않았는데 오늘은 자그마한 일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은행이체를 하려는데 하필이면 오늘 홈페이지 리뉴얼이라고 입력폼이 바뀐 탓에 헤매야 했다. 늘 가던 중국집의 짬뽕밥 밥알갱이들은 오늘따라 유난히도 오래된 시멘트 덩어리 마냥 덕지덕지 뭉쳐 있었다. 아침까지도 별말 없던 아내는 톡으로 짜증을 내는가 하면, 수요일에 주문한 인터넷 쇼핑몰 제품은 아직까지도 배송준비중이라 한다.


주기도문에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그렇게 그렇게 그 오랜 기독교신자였던 시절동안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수도없이 기도를 드렸건만 신은 늘 우리를 시험하려 든다.


어제 노호혼이라는 게 왔다. 사진처럼 생긴건데 플라스틱 풀잎쪼가리가 태양열건전지에 의해 하루종일 위아래로 바람에 날리듯 위아래로 흔들거리는 거다. 저걸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진정이 되어서 우울증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문구에 끌려 샀다.


그런데 산지 만 하루도 되지 않아 시험에 바로 들게 하시는 신의 능력에 감복한다.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나만 감시하시나. 저 좀 놔주세요. 이제는 저 기독교인도 아니고 부활절이라고 계란 먹으러 가지도 않습니다. 부디 따로 놀아요.


이제 곧 사장님 방에 들어가 결재도 받으러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따라 운이 이렇다. 나는 그저 하루를 평안하게 살고픈 민초일 뿐인데 왜 그런 날 괴롭히는거냐구.


굽신굽신

부디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6_f8aUd018svc1vqc5dxhk9pro_3qs142.jpg?type=w520


loading.gif



작가의 이전글빵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