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만한 뻔한 핑계를 대서라도 조퇴하고 집에 가서 자고픈 아침
지하철문이 닫히고 출발하기 전까지의 아주 짧은 순간의 정적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삐집고 들어오는 아주 작은 부스럭거림이 있다. 마치 극장에서 영화 상영 직전 정적속의 부스럭거림을 잠시 떠올리게 한다.
그도 잠시 바로 시작되는 지하철의 철커덩거림은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듯 오늘따라 유난히도 설레게 들려온다.
좋은 시작을 알리는 연결고리는 버스로까지 이어졌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자마자 마치 자가용이 대기하고 있던 것 마냥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앞에 많은 사람들이 탔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자리가 있었다. 이런 일은 일년에 한두번 일어날까 말까 한 그런 일인데 그날이 오늘인갑다.
크리스마스 5일전이라고 미리 조물주님께서 떡밥을 던져주신 건 아닐까도 싶다. 이제 미끼를 물었으니 고스란히 조물주의 찬거리가 되어 잘근잘근 씹히거나 혹은 조물주의 보물단지 중의 하나가 되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밥상을 먹게 될지도.
대개 후자일 가능성보다는 전자일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희박한 가능성을 바라보는 게 사람이던가? 아니 나만 그런가? 어쨌든.
얼마안가 한 무리의 처자들이 타더니 엔진의 덜덜거림만 가득하던 버스안이 그녀들의 재잘거림으로 채워졌다. 그녀들의 재잘거림은 규칙적으로 들려오던 버스안의 소음을 금새 불규칙적으로 바꿔버렸다.
가끔 그런 그녀들 틈속에서 같이 수다에 푹 빠져들고 싶을 때도 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꺄르르 웃고 떠듬에 뭐가 그리도 좋은지 하도 궁금해서.
엊그제 퇴근길에 버스가 늦게 왔다. 늦은 밤 야근을 하고 가는 것도 싫은데 찬바람까지 오래 맞고 있었다. 게다가 버스가 늦게 오니 당연히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원래 그 늦은 시간에 버스는 거의 텅텅 비어서 가는 게 정상인데 그날 따라 사람들이 미어터지게 버스를 가득 메웠다.
이윽고 버스가 왔고 짜증도 난 김에 기사 아저씨한테 한마디 던졌다.
"아저씨, 배차 시간이 왜 이따위에요. 이 시간에 이렇게 미어터지게 타는 거 보세요."
그러자 그가 말하기를
"눈이 와서 그래요." 라는 짜증형 단답형이 날라왔다.
그런데 이 아저씨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건 바로 들통이 나버렸다. 버스는 평상시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질주를 하고 있었다. 눈이 와서 도로가 미끄러워 늦어졌다고는 하는데 실상 도로의 눈은 거의 다 녹아 있었기에 다니는데 별 지장이 없었던 게다. 이 속도라면 눈이 와서 서행을 한 거라는 건 완전 뻥이었다.
눈이 와서 그렇다라는 핑계는 대개 직장인들의 흔한 지각 사유중의 하나인 핑계거리다. 그에게도 핑계거리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날 따라 눈이 온 게 그에게는 핑계를 댈 적절한 사유가 하나 늘어난 셈일지도 모른다.
눈이 와서 피로도 쌓이고
곧 크리스마스고
잠은 쏟아지고
그래서
늘 그러기도 했지만
어쨌든 누군가의 수다속 한마디처럼
나 또한 오늘이 금요일같고
그러니까
누구나 다 알만한 뻔한 핑계를 대서라도 조퇴하고 집에 가서 푹 자고픈 그런 아침이다.
오늘따라 유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