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처음이라서 그리고 익숙하더라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비가 내려도 매미는 울더라. 비가 내려도 비둘기는 흙에서 먹이를 찾아 먹더라. 사람이 닿을 정도로 다가가도 달아나지 않더라. 애타고 배고픈 건 비가 와도 똑같더라. 아니, 더 절실해지더라.
고수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 하니 환경 탓도 하지 않으리. 처음인 생이었을 텐데 그들은 고수였나 보다.
사는 게 아무리 고단해도 끝을 보지 않는 한 끝난 게 아니다. 그렇더라도 이 또한 지나가더라. 죽을 만큼 아프고 죽을 만큼 미칠 것 같아도 죽지 않으면 이 또한 지나가더라.
통증은 또 찾아왔다. 너무도 아파 병원을 찾으니 점심이란다. 진통제 주사를 맞고는 배를 때려가며 제자리 뛰기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소파 주위를 몇십 바퀴고 돌아다녔다.
간호사는 이런 장면을 여러 번 봤을 것 같다. 다만 대기 중인 환자는 저 미친 녀석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라며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을 것이다.
진통제를 맞아도 효과가 그다지였다. 찾아온 녀석의 이름은 성은 요로요 이름은 결석이었다. 출산의 고통보다 심하다는 그것이고, 그것이 빠지면 마치 꾀병이었던 마냥 아무렇지도 않은 게 이 녀석의 정체다. 그리고 이 녀석, 그 어느 누구도 다시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녀석의 방문에 하루가 들썩거렸다. (그저께)
일부러 물도 자주 마시고 관리를 잘한다 생각했는데 뭔가 개운치 않았던 모양이다. 이리도 불쑥 찾아오다니. 초음파와 엑스레이를 찍고 나니 녀석이 작정하고 왔나 보다. 그래 나 참 고민 많긴 했다. 2019년 말이다. 고민 많은 거 이미 알고 있어서 이리 경고음을 내주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솔직하게 이제 와서 고백을 한다면 내 삶은 글에서 보는 것처럼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그냥 타인과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 글은 단지 시선을 달리 할 뿐이다. 즐겁지 않은 일들을 즐거운 시선으로 승화시키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조작이나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 얘기하는 건 아니다. 단지 해석을 달리하는 것뿐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스스로 힐링하는 것일 뿐.
지금 난 매미나 비둘기만큼 절실한가?
그렇다. 아니,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모르겠다.
준비가 되지도 않았고 처음이라서 아니 익숙하더라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들이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를 당구공을 있는 힘껏 때려버린 어설픈 초보자의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돌고 돌다 어딘가로 가겠지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