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남자가 길거리에 드러누워 있었다.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저녁 9시였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볼썽사나운 꼴을 보이는 것이고 행인에게는 그냥 지나치기엔 양심을 찌르게 하는 짓이고 편안하게 기다릴 가족에게는 나쁜 소식이 전해질 것이다.
112를 누를까?
경찰은 또 무슨 죄라고 술 취한 행인에게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긴단 말인가. 저런 애들한테 시간 뺏기라고 일하는 거 아닐 텐데. 게다가 경찰서에 데려가도 그의 주정 때문에 당할 그림이 그려졌다.
경찰들 고생할까 싶어 누르지 말까 싶다가도 길가에 저리 누워있다 행여 누군가 실수로 차로 치기라도 하면 그 운전자는 뭔 죄인가 싶어 결국 112를 눌렀다.
아 거기요? 다른 분이 신고하셔서 가는 중입니다.
폭탄처리반 출동이다.
다행이다. 누군가 가해자가 되는 일은 없을 테니. 가족들은 고단하겠다. 드러누운 포즈가 한두 번이 아닌 듯 하니.
다행이다. 내 가족 중엔 저런 이가 없어서.
폭탄을 뒤로하고 역에 도착했다.
원래는 기차표가 없었다.
조회해도 나오지 않아 대기표를 예매했는데 문자가 왔다. 표가 나왔으니 언제까지 끊지 않으면 니 표는 다른 사람에게 갈 거라는 공갈협박과 함께.
그렇게 구한 표로 기차에 올랐는데 럴수 럴수 이럴 수가.
하필이면 4자리가 서로 마주 앉는 가족석이었다.
가족석.
KTX를 이용해본 사랑면 알 것이다. 가족석이 얼마나 불편한지.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가족석에 앉히는 철도청의 만행을 규탄한다.
맞은편은 또 술 한잔 한 듯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음매. 나한테 왜 이래. 그는 아니나 다를까 별로 길지도 않은 다리를 애써 꼬아 앉더니 정강이를 툭툭 건드리기를 서슴지 않았다.
내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아 보였거나 다리 팍이 감각이 전혀 없거나일 것이다. 혹은 어쩌면 이 아저씨가 지금 감히 내게 작업 거는겨? 이런 xxx.
이마에 맺힌 기름이 좔좔 흘러내릴 내천자 골짜기가 만들어지며 눈에서 슈퍼맨도 저리 갈듯한 레이저 광선을 뿜어대며 입을 모아 모아 모아서 구시렁대어주니 그제야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꼬아앉은 다리를 거치는 거였다.
오오오오! 먹히는데?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인간 얼렁뚱땅 또다시 정강이를 슥슥 건드리는 게 아닌가. 아, 이건 작업인겨? 넌 나의 스타일이 아녀. 이 시끼야.
재차 레이저를 쏘아대니 금세 겁을 먹었는지 이내 "죄송합니다" 라며 자세를 고쳤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정강이를 쓱쓱 건드린다. 이번엔 레이저 광선이 먹히지 않게 자는 척을 하면서 말이다. 피곤한가 보지. 그래 피곤한가 보지. 조금이라도 그대보다 착한 내가 좀 참아줄게.
술 취해 거리에 대자로 뻗은 인간이 가족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더니만 가족이지 않았음 할 사람과 굳이 가족석에 끼어앉혀 가족을 만들어주신 조물주님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다.
집 나온 그대여 어서 가족 품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