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날 건 언제든 혼나는 것이니 하고픈 건 주저하지 말라
날이 추워지고는 있지만 아직 가을은 그곳에 있었다. 곱게 한복이라도 차려입은 듯 단풍을 둘러 입고 한껏 자태를 뽐낸다. 그 예쁨 보려고 사람들이 거리면 거리마다 도로면 도로마다 북적북적거린다. 주차를 하는 데만도 몇십 분이나 걸렸다.
주차를 하고 나오려는데 주차관리인 아저씨가 부업인 찐 옥수수를 홍보하고 있었다. 그 앞을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그리고 혼자 먹기엔 부담스러워 아내에게 졸랐다. '옥수수', '옥수수'를 귀에 박히도록 말하니 사 먹으라 한다. 그런데 변덕도 심하지. 사 먹으라 하니 왜 먹고 싶은 생각이 싹 다 사라지는 걸까. 그러더니 이제는 그 아래서 파는 군밤이 먹고 싶어 진다.
'군밤', '군밤' 먹자고 또 생떼를 부리다가는 꿀밤을 먹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멈췄다. 살고자 하면 위험수위를 넘어서면 아니 된다. 고로 직진이다. 가을 구경하러 직진이다.
가을 숲으로 들어서니 군밤 생각도 당연스레 멀어졌다. 가을의 향기에 푹 빠져들었는데 어찌 먹을 게 생각나겠나. 사방을 둘러보니 눈이 호강을 한다. 역시 가을엔 절인가. 마지막일지도 모를 가을을 가슴에 담고 사진에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잠에서 깨니 아내 왈 커피를 마시고 싶다며 컵이랑 가져달라는 게다. 감기에 걸릴 것처럼 목소리가 코맹맹이 소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감기에 걸릴 거 같다고 따뜻한 차를 마셔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답했다.
"그 목소리가 너무 예쁜데? 그냥 감기 걸리면 안 돼?"
꿀밤 1이 날아왔다.
TV를 켜니 사랑꾼 션과 정혜영이 나오는 거다. 정혜영이 무슨 요리를 만드는데 코코넛 밀크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니 션이 그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번갯불처럼 뛰어서 사 오는 것이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와, 션이 왜 션인지 알 거 같네."
그래서 한마디 날렸다.
"저저 나쁜 시끼 봐라. 남자의 주적이야."
그리고 꿀밤 2가 날아왔다.
난 밤이 먹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혼나는 걸 즐기는 것일까?
가끔 헷갈린다. 어차피 맞을 꿀밤이었더라면 군밤을 먹고 꿀밤을 맞는 게 덜 억울할 텐데.
그러니까 말이다, 혼날 건 언제든 혼나는 것이니 하고픈 건 주저하지 말라. 지나간 것에 대한 기회는 언젠가는 다시 오겠지만 당장은 생기지 않는 법이니.
(진관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