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과 숨바꼭질의 경계에서
뛰다 보니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뒤쪽에서 느껴지는 허전함, 그것은 백팩 가방이 열린 채로 달리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직선코스에서 뛰던 걸음을 멈추게 되면 더 지칠게 뻔하니 좀 더 뛰다 옆길에 들어섰을 때 멈추어 가방을 열려 있던 가방을 닫았다. 가방이 좀 많이 열려 있었기에 뭔가 떨어지지는 않았을지 불안했다. 그래도 설마.
그러고 나서 한참 후에 가방을 뒤지니 안경케이스가 보이지 않았다. 아뿔싸, 가방이 열린 채 뛸 때 뭔가 불안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바로 이거였구나. 덤으로 안경케이스가 탈출하면서 다른 얘들도 데리고 나가지는 않았는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가방 안에 중요한 게 없긴 했지만 뭐가 없어졌는지 모른다는 게 더 답답했다. 아마 안경케이스가 나올 정도면 무언가 따라 나왔을 거라.
혹시라도 안경케이스를 집에 놓고 온 것은 아닌가 싶어 아내에게 톡을 날렸다. 집안을 둘러본 아내는 없다고 답했다. 좀 더 세심하게 찾아보라고 했지만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이건 빼박이다. 분명 뛸 때 가방에서 빠진 것이다.
가방에서 빠진 것 같다고 걱정하니
아내는 내게 쿨하게 그러려니 하라고 했다.
그냥 안경케이스일 뿐이니 잊어버리라고.
하지만 안경케이스를 흘리면서 다른 무언가도 함께 사라진 건 아닐까
그것이 걱정이었다.
그리고 그게 뭔지 모른다는 게 더 답답했다.
아내는 그마저도 추측일 뿐 사실과 관련 없는 걱정은 하지 말라며
그건 에너지, 시간, 감정 낭비라 하였다.
나도 안다.
그래도 사라진 건 내 거고 사라졌을 무언가도 내 거니까 걱정되는 거다.
대체로 분실물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탈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숨바꼭질이다.
탈출하는 것은 영원히 못 찾는 것이고 숨바꼭질은 언젠가는 찾아진다는 것이 다르다.
탈출은 대체로 혼자 탈출하지 않는다. 꼭 누군가를 동반하여 탈출을 시도한다. 마치 스티브 맥퀸 주연의 대탈주처럼 혼자 사라지는 법이 없단 말이다. 아, 정말 못된 놈 아닌가. 내 가방이 무슨 포로수용소였더냐. 탈출을 감행하게.
아니다. 숨바꼭질 일지도 모르는 거다. 숨바꼭질은 어딘가에 꽁꽁 숨어있다가 의도치 않은 장소에서 발견된다. 왜 누가 거기에 숨겨놓았는지 모를 장소에 꼭 숨어 있다는 게 특징이다. 그리고 늘 혼자 몰래 조용히 있다가 나온다. 빨리 발견되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기도 하며, 너무 늦게 발견되면 오랫동안 숨어 지낸 탓에 먼지와 떼를 뒤집어쓰고 빛바랜 모습으로 발견된다.
업무가 종료되자마자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혹시나 어딘가에 흘렸을지도 모를 안경케이스부터 찾아보았다. 길가 오른쪽 왼쪽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바라보며 되짚어갔다. 그러나 안경 케이스는커녕 비슷하게 생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런 걸 누가 주워갔을 리도 없고.
터벅터벅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나 아내가 찾지 못한 건 아닐까 싶어 둘 만한 곳은 다 뒤져 보았다. 역시나 없었다. 아내의 충고를 되새기며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다 저녁을 먹고 약봉투가 든 비닐봉지를 집어 드니 그 안에 웬 녀석 하나가 쥐 죽은 듯 숨어있다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까꿍". '아악, 인마 너 거기 숨어 있었니? 야 너 거기서 뭐해.'
녀석은 탈출을 한 게 아니라 다행히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놈의 자식. 넌 오늘부터 절대 외출금지다 요놈아. 종일 심장에 삶은 고구마 백개는 쑤셔놓은 듯싶었는데 말이다. 찾아진 녀석은 혼을 당하고는 이내 잠들어 발 뻗고 자는 중이다. 숨어 있는 것도 고단했던 모양이다.
숨바꼭질 놀이에서 마음이 조급 해지는 건 늘 술래의 몫이다. 하지만 숨바꼭질 놀이의 특성상 언젠가는 어디선가 찾아진다는 것만 명심하면 굳이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꽁꽁 숨어봐라. 사람의 행동반경 특성상 언젠가는 찾아지기 마련이다. 심지어는 이사하다가 뜻밖의 물건이 찾아지기도 하는 게 숨바꼭질 놀이의 특성 아닌가.
하루가 벌써 가버렸다.
굿잠하러 가자. 모두 고단한 하루였지만 수고했으니 이제 웃는 얼굴로 굿잠하러 가자.
꿈속에서만은 숨바꼭질하지 말고 포근함 속에서 뒹굴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