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보다 빛나는 조연
어릴 적 시골 고향집에는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뒤꼍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던 녀석은 가을이면 달고 연한 홍시를 먹여주곤 했었다.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터라 녀석의 행위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존재감은 이별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걸까.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녀석과도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고 이후로 감을 먹으려면 시장이나 마트를 가야만 했다.
그런 녀석을 얼마 전 출퇴근길을 오가며 다시 만나게 되었다. 가로수 중에 감나무가 있었던 게다. 몇 그루 되지 않지만 반가웠다. 설마 가로수로 감나무를 만나게 될 줄이야. 이 녀석이 과실을 맺기 전까지는 미처 감나무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몰라봐서 미안하다. 눈이 삐었지.
가을이 익어감에 따라 감도 익어갔다. 잘 익어갈 즈음 누군가 따가지 않으면 홍시가 되어 길바닥에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어떤 날강도 같은 놈이 한 알도 남김없이 몽땅 따갔다. 나쁜 시끼. 한 개 정도는 벤치 위에 남겨두고 가지.
거리를 가득 메운 주연급의 울긋불긋한 단풍나무들보다도 참 이뻤는데 말이다. 거리의 주역은 아니었어도 과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신통방통 하기까지 했었는데 말이다. 도둑놈. 잡히기만 해 봐라.
비록 도둑맞았지만 그래도 넌 마치 드라마나 영화 속의 주연보다 더 빛나는 조연 같았다. 씬 스틸러 말이다. 그게 올가을엔 너였다.
그 많은 가로수중에서도 하루하루 꾸준히 과실을 키워간 너의 부지런함에 푹 빠져 있었다. 주연이 아니었어도 짧은 순간 스쳐간 조연이었지만 그래도 내게는 아름답게 빛난 존재였다.
그러고 보면 인생에 있어서도 꼭 주연을 맡을 필요는 없다. 무엇으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 아닐까.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해서 누군가에게 의미를 주는 삶이라면 조금은 더 멋지겠지.
그래서 말이다. 두 손 모아 기도드려야겠다.
내 감 훔쳐간 그 흉악한 도적놈,
변비 걸리게 해 달라고.
저 멀리 마음씨 착한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감나무가 있다.
솔직히 고백하면 보이지는 않지만 저쯤 어딘가에 있기는 하다. -_-